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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9월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 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주십사고 붙들었다.”

인생의 황금기, 공생활의 절정기를 보내고 계신 예수님의 활기찬 모습을 잘 엿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제가 예수님 입장이라 하더라도 너무나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크게 환영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에 온 몸과 마음,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경청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빵의 기적을 군중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 가장 큰 고민거리들을 말끔히 해소시켜주십니다. 평생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던 고질병 환자들을 치유시키십니다. 악령의 횡포로 인간들 세상에서 살지 못하고 매일 밤 성 밖 무덤가를 떠돌아다니던 마귀들린 사람들을 구해내십니다. 가는 곳 마다 백성들에게 참 기쁨과 행복, 구원을 선물로 안겨주시니,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분의 곁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 급기야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 식사 시간, 취침시간, 휴식시간마저 챙길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이 너무나 행복했던 사람들, 그분과 함께 지냈던 순간이 너무나 감미로웠던 사람들, 그분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컸던 사람들이었기에 다른 고을로 떠나시는 예수님을 붙잡으며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제발 빨리 내 눈 앞에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왜 하필 내 인생에 끼어들어 날 힘들게 하는가가 아니라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붙잡으니 예수님 입장에서 얼마나 행복하셨겠습니까? 이런 백성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셨지만, 한 고을에 눌러앉아 계셔야 할 작은 분이 아니시기에, 또 다른 양떼들도 돌봐야할 분이셨기에, 아쉽지만 또 다시 여행길을 떠나십니다. 가끔씩 신자들로부터 듣는 말씀 중에 자기들 본당 주임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인사발령에 의해 떠날 때가 됐답니다. 돌아보니 주임 신부님과 함께 했던 날들이 꿈결같이 아름다웠답니다. 이렇게 떠나신다니 너무나 아쉽고 섭섭해 눈물이 앞선답니다.

제발 좀 더 계셨으면, 아니 단 1년만이라도 더 계셨으면 하는 본당 신자들의 바람에 주교님께 청원까지 하셨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함께 쌓은 추억들, 사랑이 너무 컸기에 주고받은 상처들, 떨쳐버리기 힘든 아쉬움들, 미련들을 뒤로 하고 홀연히 떠나가시는 사목자의 뒷모습이 참으로 눈물겹고 소중합니다. 정녕 바람 같은 인생, 구름 같은 인생,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있잖아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머물러 주실 수 있겠는지요

바람과 비와 눈과 냉랭한 하늘 아래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저 겨울 숲처럼
그리 서계실 수 있겠는지요

(…)

저렇게 무리 속에서도 홀연히 설 수 있는 것은
외로움 속에 침묵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구요

저렇게 맑은 소리 내는 것은
제 안을 가득 채우지 않고
자꾸자꾸 비워내기 때문이라구요

(…)

그러나 참기 힘든 그 외로움의 자리에서
대숲에 일렁이는 푸른 바람소리로서 계신 당신
그런 당신을 바라보며
저라고 어찌 견디어 내겠는지요

비어있되 충만하고
차갑고 냉정하되
불같은 열정과 따스함을 지니리라고

제 마음자리 이미 오래 전
기다림과 열망의 임계점에서
당신으로 푸르러지는 것을요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