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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웃의 어깨에 날개를

8월31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래전 경미한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사고 여파로 잠깐 의식을 잃었더랬지요. 깨어보니 응급실이었습니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이 아팠습니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또 제 몸 이곳저곳도 살펴봤는데, 기가 차지도 않았습니다. 제 입에는 호스가 끼어있었는데, 식도를 통해 위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다 산소마스크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양팔에는 링거병이 각각 하나씩 달려있었습니다.

평소 몸에 뭐든 다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해 시계나 반지도 끼지 않던 저였는데, 호스며 산소마스크며 링거병이며 주렁주렁 매달려있으니, 정말 답답해 죽을 맛이었습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간호사 선생님은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며 경고를 줬습니다.

한 이틀 그렇게 답답하게 지냈는데,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다행히 사흘째 되는 날 상태가 호전되어 그 모든 장치들을 떼어낼 수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해방감이란 정말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억압으로 해방된다는 것, 부자유스러움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 사슬을 끊는다는 것, 종살이에서 풀려난다는 것, 감옥에서 출옥한다는 것, 그것은 곧 또 다른 천국체험입니다. 또 다른 출애굽입니다. 또 다른 탄생의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면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명백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 그분의 존재, 그분의 정체성, 그분의 실존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해방자’입니다.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 가운데 정말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이 치렁치렁 달고 다니던 죄의 사슬을 끊어주신 해방자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힘겹게 지고 다니던 멍에를 끌러주신 해방자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해방자셨습니다. 그분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인권, 인권 부르짖는데, 인권이란 무엇입니까? 한 인간이 자유로울 권리가 인권입니다. 한 인간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권입니다. 한 인간이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권입니다.

참된 해방감, 그것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내 마음이 편해지는 동시에 상대방도 무장해제를 하지요. 그렇게 될 때 상대방의 내면이 들여다보입니다. 그가 아픈지, 혹은 슬픈지, 그가 기쁜지 혹은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나’의 치부가 보이고 부끄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나를 여는 작업과 더불어 내 부끄러움을 던져버릴 수 있고, 마침내 열린 마음과 창을 통해 우리는 고통과 근심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왕권은 갑자기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작은 사랑의 실천들이 모여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 갑니다.

병고나 죄, 고통의 사슬에 묶인 이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해줌을 통해서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조금씩 완성되어 갑니다.

부당하게 갇혀있는 이웃, 억울하게 묶여있는 이웃, 사랑의 결핍으로 울고 있는 이웃들을 외면하는 세상은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이웃이 좀 더 성장하도록, 이웃이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록, 이웃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은 그를 놓아주는 것,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 그를 다양한 유형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