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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또 다른 변화를 꿈꾸며

8월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부스럼’, ‘마른버짐’, 이런 말들 들어보셨습니까?
전쟁이 끝난 후 아무것도 없던 시절, 영양 상태를 점검할 겨를이 없던 시절, 그저 배만 채워도 감지덕지이던 시절, 환경적 요인으로 저희 또래 중 많은 아이들이 이런 병을 끼고 살았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어서 얼굴 여기저기가 허옇게 일어났습니다.
너무나 보기 싫어 수돗가로 달려가 씻고 또 씻어 겨우 없앴는가 하면 어느새 다시 일어났습니다.

머리카락 속은 군데군데 부스럼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약을 바르려고 어머니는 부스럼 주변머리를 가위로 잘라내다 보니 그 몰골이 참으로 볼만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친구들이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양아치’였습니다.
이런 저였는데, 많이 발전한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놀라운 일을 제게 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바람을 지녀봅니다.
아직도 이렇게 중심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영혼이지만, 아직도 주님 보시기에 부족하고 부끄러운 영혼이지만, 언젠가 그분 도우심으로 또 다른 변모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이 초라한 육신의 장막이 허물어지는 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빛나는 구원의 갑옷을 입혀주시리라는 희망 말입니다.

그 때 우리 얼굴은 성인성녀들과 더불어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토록 고달파도, 이토록 부끄러워도, 이토록 힘겨워도 다시금 힘을 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사람은 누구나 보다 나은 삶에로의 변화를 꿈꾸지요.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보다 깊은 신앙 소유자로 탈바꿈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보다 성숙하고 영적 인간으로 쇄신하기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변화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머물러 있던 틀에서 나온다는 것은 정말 힘겨운 일입니다.

어제의 나와 결별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지녀왔던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죽기보다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또 다른 변화를 꿈꾸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 삶이 너무나 하찮아보일지라도 변화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변화는 우리 바람처럼 그렇게 빨리 다가오지 않습니다.
회개 역시 전광석화처럼 이뤄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것처럼 다가오는 것이 변화요 회개라고 저는 믿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라 할지라도 언젠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실 주님, 우리를 한 차원 높은 삶에로 이끌어주실 주님, 우리 얼굴을 해맑은 천사의 얼굴로 변모시켜주실 주님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매일에 충실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한 피정 강의를 가서 느낀 것입니다.
오신 분들 얼굴을 쭉 한번 훑어보니 금방 느낌이 오더군요.
많은 분들께서 나름대로 한 사연씩, 한 십자가씩 지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마음 터놓고 하소연할 곳은 하느님뿐이라고, 최종적 해결책은 그분만이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었기에 다들 편안해보였습니다.

열심히 하느님께 매달리는 모습들, 간곡히 부탁드리는 모습들, 간절히 하느님 은총을 기다리는 모습들 앞에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분들 앞에 어쩔 수 없더군요.
원칙만을 되풀이해서 강조할 수밖에.

“여러분들, 부디 힘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면 질수록
우리는 예수님을 가장 빼닮은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록 힘겹지만 지금 우리가 지고 있는 이 십자가야말로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가장 큰 은총의 도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닮습니까?
매일 같은 음식을 먹어서?
같은 비누를 써서?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닮는 가장 큰 이유는 동고동락(同苦同樂)하기 때문입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고통당하고, 같이 십자가를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십자가, 불평불만하지 말고 꿋꿋이 견뎌나갈 때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얼굴은 거룩하신 주님 얼굴로 변모돼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나아갔을 때 당신과 꼭 빼닮은 우리 얼굴을 보신 예수님께서 엄청 기뻐하실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이제 모진 비가 그치고 태양이 다시 떠오릅니다.
또 다른 희망의 바람이 절실한 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책장들을 넘길 때입니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 좀 더 변화하기 위해 힘차게 일어설 때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