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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 우리는 어떤 줄을 붙들고 있습니까? 생명줄인가요? 아니면 썩은 동아줄인가요?

7월23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철없는 이스라엘을 향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경고 말씀이 얼마나 강력한지 수천년 세월을 건너와 오늘 우리의 귀까지 먹먹하게 할 정도입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예언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잘 갈아놓은 쌍날칼처럼
날카롭기만 합니다.

사실 예레미야처럼 기구한 운명의 예언자도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그는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청소년의 나이에 예언자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히고 부담스러웠던 소년 예레미야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을 모릅니다.(예레미야서 1장 6절)

그러나 주님 역시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끊임없이 자극하시고 재촉하셨습니다.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겠다. 부족한 것을 다 채워주겠다. 용기를 내라. 앞으로 나아가라!”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예언의 사명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또래 청소년들 적당히 모아놓고 교리 지도하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회개를 선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왕궁으로 가라하십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지도층 인사들이 모인 장소로 가라합니다.

가서는?
외치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이스라엘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철저한 파괴를!

요즘으로 치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회의 석상으로 가라고 한 것입니다.
가서 대한민국의 멸망과 한국 천주교회의 파괴를 외치라고 한 것입니다.

듣도보도 못한 애송이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서 파괴니 멸망이니 엉뚱한 말을 해대니 원로들과 지도자들을 콧방귀를 뀌었을 것입니다.
다들 헛웃음을 터트렸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입장에서 두려움도 컸겠지만, 도무지 말발이 먹히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예언의 사명이 얼마나 힘겨웠던지 그는 주님을 원망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날마저도 저주합니다.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예레미야 15장 10절)

초년병 시절 예레미야 예언자에게서는 위엄과 포스가 넘치는 파워풀한 예언자로서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나약한 한 소년의 모습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명이 너무나 벅차고 힘겨웠던 예레미야 예언자는, 때로 자신을 부르신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멀리 도망가고도 싶었지만,
결국 우리 인간은 옹기장이이신 주님 손에 들린 옹기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정한 예언자로서 거듭납니다.
주님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백성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첫번째 독서를 통해 이스라엘과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는 예언의 말씀은 다른 예언서에서도 자주 되풀이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각별히 사랑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총애하셨습니다.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딱 찍어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간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처럼 챙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인도하고 축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주님의 사랑에 감지덕지하면서 주님께 충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도 모자라 반역을 거듭했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바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예레미야서 2장 12~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풍요와 다산으로 안내할 신이라 여기고 바알이라는 동아줄을 잡고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그 줄은 썩은 동아줄이었습니다.
결과는 집단적 타락과 멸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죽기살기로 큼지막한 지하 물탱크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젖먹던 힘까지 다 퍼부어서 물탱크가 완성되었습니다.
크게 기뻐하면서 물탱크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아무리 물을 갖다 부어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밑바닥에는 큰 틈이 있었고, 그리고 물이 다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없이 오로지 우리 힘만 믿고 뭔가 하려고 할 때 드러나는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주님 뜻을 반하는 일이라면 커다란 산 하나를 옮긴다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과 등을 돌린 상태에서라면 아무리 큰 희생과 헌신이라 할지라도 헛고생일 따름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줄을 붙들고 있는가요?
생명줄인가요?
아니면 썩은 동아줄인가요?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