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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다리시는 하느님

7월19일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저는 어지간해서는 병원 신세를 안 지고 끝까지 버텨보는 체질입니다.
병원 문을 들어서면 솟아오르는 왠지 모를 두려움, 병원 특유의 냄새, 복잡한 절차를 싫어하지요.
어지간한 병은 제가 개발한 ‘민간요법’으로 버틴 지가 벌써 10년도 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간단한 문제였지만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할 필요가 생겨서 가까운 동네 병원엘 들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치료차 병원에 간 저는 여러 가지로 많이 놀랐습니다.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들의 눈에 띄는 친절,
첨단화한 진료기구에 따른 신속 정확한 진단과 처방….

‘야! 정말 세상 좋아졌다! 이런 병원이었다면 진작 왔을텐데…’
하는 후회가 절로 들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특히 저를 진료해주신 의사 선생님의 친절과 인내는 가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증세에 대해서 차근차근 물어보신 의사 선생님은 세밀하게 검진을 마친 다음, 증상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자상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저한테만 특별히 친절한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제 뒤에 성격이 꽤나 거칠고 급한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제 진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진료실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횡설수설하시는 할머니를 마치 아기 다루듯이 자상하게 대했습니다.

“할머님! 이 분 진료 다 끝나가니 잠깐만 이 의자에 앉아 계셔요.
금방이면 되니 조금만 참으세요.”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병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아주 중요합니다.
정확한 진단에 따른 적절한 투약과 조치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환자를 대하는 치료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자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환자의 아픔과 상처를 내 아픔과 상처로 여길 때, 환자 앞에 끝없이 인내하고 친절을 베풀 때 치유효과는 극대화될 것입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부족한 인간들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한없는 인내와 자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수도자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발버둥치지만 되돌아보면 언제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생활이었습니다.
때로 부끄러움이 지나쳐 비참했던 생활, 그래서 절망도 많이 했고 좌절도 많았던 삶이었습니다.
기나긴 방황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제가 당신께로 돌아설 때마다 언제나 기쁜 얼굴로 꼭 끌어안아주시며
한없는 인내를 보여주셨습니다. 셀 수도 없이 용서를 계속하셨습니다.
제 인생은 한 마디로 부족한 저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인내의 역사였습니다.

오늘 밀 이삭 가운데 섞여 있는 가라지를 즉시 가려내 불태우지 않고 추수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인내의 하느님과 관련된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 의사 선생님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인내는 예수님 특기였습니다.
인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양성하실 때 가장 널리 사용하시던 ‘전매특허’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토록 잦은 실수와 과오를 거듭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베드로에게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앞에 예수님은 끝없이 인내하십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교회의 초석이 됩니다.

그 모질던 박해자들의 채찍질과 조롱, 모독 앞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결코 ‘보복의 펀치’를 날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행하기 위해 묵묵히 인내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 오른편에 좌정하십니다.

이웃의 무례한 행위나 모욕적 언사 앞에 인내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시련, 그 앞에서 인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참된 인내가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한다고 마음먹을 때, 주님을 위해, 주님으로 인해,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할 때 참된 인내가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만 있다면…
기다림만 배우면 삶의 절반을 배우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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