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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과 증오의 비빔밥

7월13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오 10장 34절)

결혼을 앞둔 미혼남녀들 가운데 자녀를 낳아 양육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부모자격증’ 취득을 위한 시험을 치르게 하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운전을 하기 위해서 운전면허증이 반드시 필요한데, 운전보다 훨씬 중요한 부모역할을 위해 ‘부모자격증’을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부모 자녀 사이의 관계,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맺음 방식 역시 함께 성장해야 좋습니다.

갓 난 아기 때는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줘야 합니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그러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키도 부모보다 커집니다. 사고의 폭도 넓어집니다. 더 이상 갓 난 아기 때처럼 일일이 다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챙겨줘서도 안됩니다. 자발적으로 알아서 하게 둬야지요.

일일이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와의 지나친 애착관계도 슬슬 끊어가야 합니다. 다정한 친구처럼 지낸다면 더욱 좋겠지요.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를 마치고. 취직을 한 자녀 정도 되면 이제 부모를 넘어설 때입니다. 아쉽지만 네 인생은 네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란 큰 그림이 필요할 때입니다.

자녀를 향한 지나친 기대도 말고 지나친 집착도 이젠 떨쳐버릴 때입니다. 이제부터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해야 할 조언자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가족관계, 참으로 많은 연구과 무한한 인내와 끝없는 노력의 장입니다.  한 전문가는 가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갖은 기대와 집착, 희망과 절망, 사랑과 증오의 비빔밥.’

때로 가족 구성원 상호간의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너무나 힘겹게 살아가는 가정이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는 칼 하나를 빼 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칼을 들고 오랜 세월 서로를 괴롭혀왔던 집착의 끈을 잘라버릴 때 참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이 아닌 하느님을 사랑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입니다.

낮은 가치의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보다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더 큰 가치이신 하느님과의 관계에 우선권을 두는 사람입니다.

부차적인 것들, 유한한 대상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 존재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의 끈을 하느님께서 주신 칼로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최고선이신 하느님께로 한 걸음 더 다가설 때 우리 내면에는 이 세상 그 어디서도 얻지 못할 참 평화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칼이라고 다 같은 칼이 아닙니다. 강도의 손에 쥐어진 칼은 사람을 살상하는데 쓰이는 흉기가 됩니다.

그러나 외과의사의 손에 들릴 칼(메스)은 암 부위를 도려내어 사람을 살리게 하는 생명의 도구입니다.

우리의 부모형제, 가족은 과연 누구입니까?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서 이 세상사는 동안 연을 맺어주신 선물입니다. 물론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지극정성으로 서로를 보살펴줘야 합니다. 무한한 인내로 서로를 참아내야 합니다. 서로의 성장을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아무리 소중하다 할지라도 창조주이자 절대자이신 하느님과는 비교가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당연히 그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최고선이신 하느님보다 우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의 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갖은 형태의 집착을 끊어버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