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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느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애증(愛憎)과 인내의 역사

7월7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류 역사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애증(愛憎)과 인내의 역사임이 분명합니다. 주인공이신 사랑의 하느님께서 손수 쓰신 역사이지만, 동시 그런 사랑의 하느님을 끊임없이 배신하고 반역한 인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지난 인간 역사를 되돌아보니 얼마나 큰, 그리고 잦은 인간 측의 실수와 오류로 얼룩져있는지 모릅니다. 인간들의 극단적 미성숙과 동물적 본능, 자기중심주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과 폭력, 전쟁과 대학살을 불러왔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표독스러워질 수 있는지? 때로 인간이 동물보다 더 낮은 존재로 격하될 수 있음을 인간역사는 우리에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은 불행한 인간 역사의 소용돌이 그 한 가운데에 늘 서있으며, 아직도 그런 서글픈 역사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때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제대로 기지개 한번 켜보지 못했습니다. 늘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했고, 약소국의 수모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 북핵문제, 북한 문제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니만큼,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지지를 보냅니다.

수많은 고통과 시련, 눈물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를 돌아보며 때로 주님을 원망하기도 많이 했습니다. 왜 하필, 우리 민족에게 이런 십자가를 주시는가? 하고 말입니다. 평화와 선의 주님께서 왜 이 세상에 악(惡을) 허락하시는가? 하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나라 안에, 또 우리 교회 안에,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 안에, 내 안에 분명히 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떤 악은 보통 악이 아니라 거대 악(巨大 惡)입니다. 쉽게 물리칠 수 없는 구조적인 악입니다. 뿌리 뽑기가 너무 힘든 끈질긴 악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사명이 큰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악, 인류공동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려고 기를 쓰는 악, 인간의 품위를 실추시키는 악과의 부단한 투쟁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아주 큰 악의 세력들이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인 악의 축이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평화와 완성을 위해 구세주로 오신 하느님을 환영하기는커녕 철저히 박해하고 응징했습니다.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는커녕, 그분을 향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쫒아낸다고 음해했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로 봤습니다. 이 얼마나 큰 반역이요, 악입니까?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공동선을 위해, 완전히 실추해버린 국격을 되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폄하하고 위협하는 악의 축들이 버젓이 존재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미운 판인데, 뭐 그리 잘났다고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헌신해온 근로자들, 우리나라의 미래이자 새싹들을 위해 40도를 웃도는 주방에서 띰 흘리시는 조리사들을 향해 감사와 칭찬의 인사는커녕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퍼부어대는 정치인은 분명 제정신이 아닌 것이 틀림없습니다.

기회 닿는 대로, 아니 최대한 빨리 청산되고 척결되어야 할 악의 세력이 틀림없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