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이 시대 순교

7월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

순교의 영예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 웃기는 일인데…

젊은 시절, 신앙생활에 푹 빠져 살던 때, 저는 ‘어디 순교할 기회가 없나?’ 하며 여기저기 샅샅이 살피고 다녔습니다.

순교의 기회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내가 ‘병인박해 때 태어나지 않았는가?’하며 아쉬워했습니다. 순교의 영예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시대가 협조를 해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순교는 그리스도인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입니다. 순교는 작고 나약한 한 인간이 크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온전히 합일하는 축복입니다.

순교는 보잘 것 없는 인간 존재이지만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은혜로운 사건입니다. 순교는 인간의 극점이 하느님임을 엄숙이 선포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결국 순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완벽히 모방하는 일, 완전한 그분의 제자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신앙은 얼마나 확고했는지 주변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스물다섯, 참으로 꽃다운 나이이며 아까운 나이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요즘 스물다섯들은 아직도 제대로 서지도, 아직 제 앞가림도 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그런데 스물다섯의 신부님께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남기신 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의 부활신앙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게 이런 형벌을 주신 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장님께서 제게 내리시는 이 형벌을 통해서 저는 더욱 하느님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관장 나리를 더 높은 관직에 올려주시기를 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저는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한 죽음이기에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이제 곧 영원한 생명이 제 안에서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하느님을 굳게 믿으십시오.”

보기만 해도 끔찍한 휘광이의 칼날 앞에서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담대히 하느님의 신앙을 증거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 앞에 참으로 큰 부끄러움을 느끼는 하루입니다. 아주 작은 시련의 파도 앞에서도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는 제 나약한 신앙을 크게 반성합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 순교자들의 피가 우리 안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놀랍고도 위대한 순교 영성이 우리 한국 교회 역사 안에 자리 잡고 있음에 큰 자부심을 지녀야겠습니다.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영예로운 순교영성을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 내 삶 안에서 순교자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이 시대 순교는 죽을 각오로 현실의 고통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순교는 적당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목숨 걸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순교는 순교자의 마음으로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시대 순교는 일상의 비루함과 나 자신의 한계와 작은 고민거리들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는 일입니다.

이 시대 순교는 매일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더없이 환한 얼굴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