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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6월30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입원한 환자들을 방문하기 위해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저까지 컨디션이 안 좋아지고, 어딘가 아픈 것 같고, 불안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병원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다들 직면한 최대과제(투병과 쾌유)와 싸우느라 힘겹습니다. 환자나 그 가족들의 고통이야 두말할 것이 없겠지요. 병원종사자들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감정의 기복도 심해집니다. 걱정도 대단합니다. 안절부절 못합니다. 다들 정말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그런 와중에도 정말 특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환자를 만났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현재 상황이 꽤 비관적이고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얼마나 의연한지 모릅니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저 같았으면 불안해서 죽을 지경인 그 순간에 마치 소풍 나온 얼굴로 그렇게 지냅니다. 모든 것을 초탈한 신선 같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습니다. 오히려 찾아간 저를 걱정하고 격려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토록 거센 풍랑 앞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비결이 과연 무엇인가?

아마도 그분이 하느님과 맺고 있는 굳은 결속력 때문이겠지요. 그분이 온전히 하느님의 품안에 머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 영원한 안식처가 있음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그분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계시기에, 그런 모진 고통도 기꺼이 참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다시 한번 미성숙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지의 창조주이자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과 한 배에 타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살려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바닥 수준인 제자들의 믿음 앞에 무척 속상해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 같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매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 안에 주님이 항상 현존해 계신데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주님이 어디 계신가?’ 하고 외칩니다.

그분께서 늘 우리 안에 머물고 계시기에, 그 어떤 풍랑이 다가와도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걱정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이 시대, 우리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걱정거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걱정 때문에 조급히 서두르지만 그럴수록 더욱 공허해집니다. 그 공허함은 또 우리를 분주함으로 내몹니다.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지만, 바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신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고 하고 있는 듯이 여기지만 사실은 큰 의미 없는 우스꽝스런 것들에 빠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쿠르트 투골스키라는 학자는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으로 현대인을 묘사합니다.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으면서 언제나 초조해하고 안달하며 몸부림치는 존재”

하루 온종일 산적한 걱정거리들과 두려움 속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한 구도자가 이런 편지를 쓰셨네요. “네 마음을 잘 지키는 문지기가 되어 어떤 생각도 미리 물어보는 일 없이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들어오려는 생각에게 이렇게 물어보아라.

<너는 우리 편에 속하느냐, 아니면 반대편에 속하느냐?>

네 마음 안으로 들어오려는 생각이 네 편이라면 그것은 너에게 평화를 가득히 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반대편이라면 그 생각은 너를 분노케 할 것이고 네 마음 안에 온갖 종류의 탐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안셀름 그륀, ‘다시 찾은 마음의 평안’ 성바오로 참조).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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