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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십자가가 다가올 때면

6월28일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8)

갑작스런 호출을 받고 심야에 병자성사를 드리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죄송한데요, 지금 위독하신데, 신부님을 모실 수가 없어서요.”

사제들에게는 담당구역이 확실하기에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병자성사는 관할 본당 신부님들이나 원목신부님들께 부탁하도록 안내합니다. 그러나 정 상황이 안 될 때는 사제 양심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당장 돌아가시기 직전이라는데…. 신속히 가방을 챙기고, 재빨리 시동을 겁니다. 신호도 어깁니다.

병자성사를 드리러 부랴부랴 집중치료실에 도착해 보니 한 형제분께서 거의 임종 직전에 도달해 계셨습니다. 온 몸은 응급조치를 위한 각종 호스며 전선들로 복잡했습니다. 얼굴에는 핏기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연신 숨을 가삐 몰아쉬고 계셨습니다.

숨이 너무도 가쁜 나머지 괴로워 어쩔 줄 모르는 환자분을 바라보는 가족들 역시 함께 고통을 겪고 계셨습니다. 저 역시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제발 저 답답한 호흡곤란 증세를 완화시켜 주셔서 마지막 가시는 길, 편히 가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계신 형제님,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던 형제님 얼굴에 예수님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도 지독한 호흡곤란 증세로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꽝꽝’ 대못이 박힌 손과 발의 통증도 이루 말로 다 표현 못할 고통이었겠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체중이 아래로 쏠리는 현상으로 인한 심장 압박, 그로 인한 호흡곤란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호흡이 곤란했던 예수님께서는 그때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 힘을 다해 온 몸을 위로 뻗으셨습니다. 그러면 잠시나마 호흡곤란 증세가 완화됐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다시 내리누르는 체중 압박으로 되풀이되는 호흡곤란…. 십자가 위에서 몇 시간은 정녕 혹독한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세상이 통곡하던 그 성 금요일로 되돌아가 봅니다.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셔서 호흡곤란에 헐떡이시는 예수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전지전능하셨던 분, 죽은 사람마저도 다시 살리셨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비극적 죽음, 피하고자 마음 먹었으면 얼마든지 피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그 고독한 길, 죽음과도 같은 형극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십니다. 그 치욕의 십자가 위에 자진해서 매달리십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뜻을 단 한치 오차도 없이 실천하신 예수님, 그분의 순명으로 세상 구원이 왔습니다. 우리 죄인들도 희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결국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원한 생명도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하느님 나라도 없습니다. 자기희생을 동반한 십자가 외에 천국으로 향하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한 세상 살다 보면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십자가들, 절대로 바라지 않았던 십자가들이
수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로 그 어떤 십자가는 지독하게도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삶 전체를 휘감습니다. 어쩌면 평생 우리가 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물론 한평생 십자가를 예방하면서,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살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무작정 십자가를 피해 다닐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십자가에 대한 적극적 수용’ ‘십자가의 가치 인정’ ‘십자가에 대한 의미부여’입니다. 결국 십자가 앞에 대범해지는 길입니다. 십자가에 지나치게 연연해하지 말고 십자가를 친구처럼 여기자는 것입니다. 십자가 가운데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우리가 매일 걷는 십자가의 길 그 도상 위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십자가의 인간’ 예수님이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지고 가는 매일의 십자가에 대한 이해와 수용, 의미부여가 가능합니다.

번민과 고통의 십자가가 엄습해오는 순간은 하느님 만날 준비를 하는 순간으로 생각하십시오. 치욕의 십자가가 다가오는 순간은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은총의 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