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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원 기도 끝에는 반드시 + α로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기도를 추가합시다!

6월17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열왕기 상권 18장에는 참으로 통쾌한 장면이 소개됩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한판 정면 승부를 벌이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남은 예언자라고는 엘리야 예언자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아차린 엘리야 예언자는 바알 예언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450명이나 되는 바알의 예언자들이 카르멜 산으로 속속 모여 들었습니다. 바알 측 예언자들을 위해 황소 한 마리, 엘리야 예언자를 위해 황소 한 마리가 번제물로 준비되었습니다.

바알 측 예언자들이 먼저 토막난 황소를 장작 위에 올려놓았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알 신에게 불로 응답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450명이나 되는 바알 예언자들은 오전 내내 번제물 앞에서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아무런 응답이 없자 자신들이 만든 제단 주변을 절뚝거리며 계속 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알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다급해진 바알 예언자들은 더 큰 소리로 바알을 불렀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알 예언자들은 창과 칼로 자신들의 몸을 찌르며 피를 흘려댔습니다. 이리 저리 길길이 뛰면서 정신줄을 놓기도 하면서 바알의 이름을 외쳐댔지만 의미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바알 예언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고 비참했으며, 봐줄 수가 없을 정도로 민망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또 한 가지 통쾌한 일이 있었습니다. 웃기지도 않은 바알 예언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엘리야 예언자가 그들을 놀립니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반대로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자 마자 즉시 응답이 왔습니다.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본 온 백성들은 그제야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들의 기도는 꽤나 왜곡되어 있었고, 제한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강제적이었습니다. 동시에 당시 고대 근동 지방 이교도들의 기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연히 그들의 기도는 길고 장황했으며, 요란스럽고 정신 사나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형식적이고 정형화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굿하는 광경과 유사했습니다. 괴성과 비명을 지르고, 길길이 뛰고 난리치면서 잡신이란 잡신들을 다 불러냈습니다.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오늘날 사이비 교도들과도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개인기도나 자유기도, 묵상기도나 침묵기도, 다시 말해서 마음이 담긴 진정성있는 기도는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소란스런 기도, 틀에 박힌 기도, 위선적인 기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대 근동 이방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장황한 기도, 말잔치를 벌이는 기도, 잡다한 신들을 잔뜩 불러 모아놓고 그들을 성가시게 하는 동시에 집요하게 졸라대는 방식의 유치한 기도를 멀리 하라고 경고하십니다. 대신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당부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마태오 복음 6장 6절)

우리의 하느님은 길길이 뛰지 않아도, 바락바락 악을 쓰지 않아도, 자해를 하고나 데굴데굴 구르지 않아도 않아도, 입에 거품을 물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우리를 챙겨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라 열심히 청원기도를 바쳐야 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난을 목전에 두고 게세마니 동산에서 이런 청원기도를 아버지께 드리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오 복음 26장 39절)

오늘도 우리는 우리 각자를 위해, 우리 가정을 위해, 우리 공동체와 지역 사회와 나라를 위해, 지구촌 전체를 위해 간절한 청원기도를 바쳐야겠습니다. 우리 자녀의 합격을 위해, 내 오랜 고질병의 치유를 위해, 취업과 승진을 위해 간절히 청원기도를 바쳐야겠습니다. 단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청원 기도 끝에 + α로 아버지의 뜻대로 하라는 기도를 반드시 추가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우리의 청원기도는 반쪽 짜리 기도로 전락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