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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6월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연중 제9주간 수요일]

예수님 시대 유다 민족 사회 안에는 몇몇 대세 유다교 분파가 있었습니다.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에세네파, 열혈당원 등등입니다. 그중에서 사두가이파는 로마 제국에 우호적인 태도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기득권을 누렸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던 대사제나 사제들, 귀족이나 지도층 인사들은 주로 사두가이파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유다 최고의회였던 산헤드린 안에서도 상당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로마 식민통치의 현상유지를 바랐기에 예수님의 출현을 크게 경계했으며, 그분을 옭아매고 처형하는데 알게 모르게 기여했습니다.

그들은 모세5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했으며, 철저하게도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내세, 영혼 불멸, 부활, 천사의 존재, 하느님의 섭리하심을 부정했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만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중시했던 것은 오직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예배 전통을 잘 유지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하여 기득권을 보전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였습니다.

한 인간의 역사 안에서 정말 중요한 영혼, 부활, 내세를 철저하게도 배척하고 무시한 그들은 오래가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두가이들은 사라졌지만 오늘 우리 사회 안에는 또 다른 사두가이들이 버젓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우리 인간 각자의 부활을 불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혼의 불사불멸이란 진리 앞에 콧방귀를 뀌는 사람들입니다. ‘다음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두드러진 특징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거부하고 수용하지 않으니 인간의 힘만 믿습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재산, 권세의 힘만 믿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힘으로 뭘 하나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 손에 적게나마 재물이라도 생기면, 알량한 권력이라도 쥐게 된다면 하늘 두려운 줄 모르는 안하무인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다 얻은 듯이 어깨에 힘주면서 약자들을 괴롭힙니다. 입만 열면 가난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폭언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냅니다.

반대로 부활을 믿는 사람, 내세를 믿는 사람, 영혼의 불사불멸을 믿는 사람은 달라도 크게 다릅니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세상이 다가 아님을 굳게 믿습니다.

따라서 현세의 고통을 기꺼이 견뎌냅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이 세상에 충실하지만 목숨까지 걸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실패와 좌절, 병고와 죽음 앞에서도 크게 낙담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통이 크다 할지라도 그러려니 하며 너그럽게 살아갑니다. 언젠가 도래하게 될 하느님 나라를 그리워하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길고도 긴, 그리고 어두운 터널 한 가운데를 지나가시는 분들. 큰 실패와 절망 속에 살아가시는 분들. 지금 끔찍한 고통과 시련 속에 있는 환우들, 그리고 장애우들, 그리고 매일이 십자가의 연속인 가족들이 꼭 기억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지나갑니다. 모든 것이 뒤바뀔 하느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노력하실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그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견디는 일입니다. 한 인간이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얼마나 존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세상 앞에 보여주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