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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생의 참된 기쁨을 원하십니까?

5월21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가끔씩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도 꽁꽁 얼어붙은 산이나 바닷가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텐트 안을 살짝 들여다봤더니 대단하더군요.

그 안에는 강추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정도의 따뜻하고 쾌적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었습니다.
편안한 야영생활을 할 수 있는 최첨단 도구들 앞에 제 눈이 다 휘둥그레졌습니다.

요즘 이렇게 여가생활, 취미활동, 레저 활동을 통한 삶의 기쁨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1박 2일, 2박 3일 동안 원하는 장소에 가서, 원하는 취미활동을 만끽하며 원 없이 삶의 기쁨을 추구하고, 삶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노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취미활동이나 레저 활동은 삶의 한 순간이요, 인생의 양념 같은 것입니다.
그게 좋다고 인생 전체를 마냥 그런 생활로 가득 채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기쁨에도 여러 종류의 기쁨이 있고 여러 차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보다 큰 선, 보다 큰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존재로서 끊임없이 낮은 차원의 기쁨에서 높은 차원의 기쁨으로 건너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기쁨으로부터 영적인 기쁨으로 건너가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참된 기쁨은 고통 여부에 상관없이, 자리나 재물 여부에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에 기인합니다.

다른 기쁨은 순식간에 우리에게서 멀어지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영적 기쁨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입니다.

‘영성’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으로 다양한 영성이 있더군요.
우선 시대에 따라 영성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영성, 교부시대 영성, 중세교회 영성, 현대 영성. 뿐만 아닙니다.

성화의 길을 개척한 성인들에 따른 구분도 가능합니다.
베네딕토 영성, 가르멜 영성, 프란치스코 영성, 돈보스코 영성. 그게 다가 아닙니다.

주제에 따른 영성도 가능합니다.
선교 영성, 고통과 십자가의 영성, 평화의 영성, 화해의 영성. 말만 붙이면 거의 다 영성입니다.

그런데 기쁨의 영성은 수많은 영성 가운데 높은 경지에 도달한 최고봉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천재, 노력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 세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영성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성생활의 타고난 천재는 영성생활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영성생활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영성생활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성생활에 있어서 억지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는 영성생활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영성생활인 것입니다.

기도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흥이 나서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미사 때도 울적한 얼굴이 아니라 빛나는 얼굴로 앉아있어야 합니다.

묵주기도도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없이 행복한 얼굴로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쁨의 영성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말은 쉽습니다만 ‘충만한 기쁨’ ‘진정한 기쁨’, ‘참된 의미의 기쁨’을 찾기 어렵습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내 안에 기쁨이 사라진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우리가 기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원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제는 너무 커져서 그렇습니다.
내가 너무 대단해져서, 너무 높이 올라가서 그렇습니다.

가진 바가 너무 많아서, 머리에 든 것이 많아지다 보니 기쁨이 점점 사라져만 갔습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다시 한 번 작아지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밑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