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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터가 다시 돌기 시작할 때

5월20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제초작업 할 공간이 워낙 광활해서 예초기를 몇 대 구했습니다. 다들 ‘초보’다 보니 자주 고장이 나더군요. 농기구 수리 센터를 뻔질나게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근히 지출도 많아졌습니다.

한번은 또 고장이 났기에,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커버를 벗겨 분해를 했습니다. 노즐에 낀 먼지를 제거도 하고, 뒤틀어진 부품을 바로 잡기도 한 후 다시 조립을 했습니다.

‘잘 돼야 할 텐데..’ 잔뜩 기대를 품고 시동 거는 레버를 힘차게 돌려봤습니다. 그러나 웬걸, 모터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투덜거리며 또 다시 커버를 벗겨냈습니다. 그리고 이 레버, 저 레버, 조정해보고, 또 다시 시도를 해봤지만, 모터는 조금도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레버를 당겨댔던지 어깨가 다 아팠습니다. 나중에는 욕이 다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오랜 시간 수리에 수리를 반복하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있는 힘을 다해 시동 거는 레버를 돌렸습니다.

그 순간, 웽 하는 소리와 함께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웽 하는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그 순간, 또 얼마나 기쁘던지. 그 순간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봐, 하는 우쭐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예초기의 겉모양이 아무리 좋아도, 예초기의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예초기가 아무리 좋은 메이커라 할지라도, 웽 하고 돌아가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쓸모가 없습니다. 괜히 자리만 차지할 뿐입니다.

요즘 계속 선포되는 복음 말씀의 주제어는 ‘성령’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모터가 돌아가야 예초기는 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낫으로 할 일의 몇 배나 되는 일을 별 힘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끝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각자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실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의 구실을 다할 수 있습니다.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힘차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애벌레에게는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장애물이며 스트레스꺼리들입니다만, 나비에게는 세상 모든 것들이 신기한 구경꺼리들입니다.

멈춰있는 신앙인들에게는 세상만사가 다 스트레스 덩어리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미움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축복입니다. 사랑입니다. 은총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