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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간의 끝에서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5월19일 [부활 제6주간 화요일]

기원 후 50년경 바오로 사도와 살라스가 필리피에 도착해 복음을 전할 때였습니다. 필리피는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 가는 도시였습니다. 또한 행정 자치권을 가진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따라서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선포하기에 용이했을 것입니다.

마침 필리피에는 ‘점귀신’들린 여자 노예가 있었는데, 그녀는 점을 쳐서 주인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녀에게서 점 귀신을 쫒아내주었습니다.

그러자 상황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렸습니다. 큰 돈벌이의 도구였던 하녀에게서 점 귀신이 쫒겨나버리자 주인이 노발대발한 것입니다. 주인은 자신의 영업을 크게 방해한 바오로와 살라스를 지역 행정관 앞으로 끌고가 고발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다인인데 우리 도시에 소동을 일으키면서 우리 로마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에도 지키기에도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0~21절)

군중들도 합세하여 바오로와 살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난데 없이! 갑작스레! 두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을 찢어버립니다. 그리고 치욕스럽게도 옷을 벗겨버립니다.

혹시라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타의에 의해 옷벗김 당해본 적이 있습니까? 엄청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흑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오로와 살라스는 혹독한 매질까지 당합니다.

그리고 꼼짝달싹 못하게 발에 차코까지 채워서 깊은 지하 감방에 투옥시켰습니다. 짐승이 따로 없습니다. 제가 그 지경이었으면 너무나 어이없고 억울해서 소리소리를 지르며 악담을 퍼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오로와 살라스를 한번 보십시오. 그 상황에서 두분은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신기했던지 다른 수인들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두발에 채워진 족쇄도, 깊은 지하감방도 바오로와 실라스의 찬양과 기도를 막지 못했습니다. 다른 수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모습을 막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힘은 원수와 적대자들의 박해를 능가합니다. 인간의 끝에서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얼마나 슬픈 날인지 하늘 조차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떠나신 분들 생각하니 슬프지만, 살아남은 분들이 40년 세월 동안 겪으셨던 참혹한 고통을 생각하니 더욱 슬픕니다.

인간 존재라는 것, 참으로 강인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서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단 한번 겪은 끔찍한 체험 한번이 평생 가기도 합니다.

함께 길을 나선 동료들이 끔찍히 죽어가는 모습을 두눈으로 생생히 목격한 살아남은 분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틈만 나면 죄책감에 눈물을 흘립니다.

한참 어린 군인들 앞에 강제로 무릎을 꿇리우고, 옷벗김 당하고, 인정사정없는 군화발에 짐승처럼 짓밟히고, 정신없이 두드려맞던 기억은 40년 세월이 흐른 후에도 매일 밤 악몽으로 되살아납니다.

그 어떤 보상이나 사과로도 치유되지 않을 그 깊은 상처를 자비하신 주님께서 당신 크신 사랑의 힘으로 위로해주시고 치유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와 왜곡을 강력히 처벌하는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법적 책임이 없다! 사죄할 필요성을 못느낀다. 사죄할 것이 없는데 어떻게 사죄하냐?”며 오리발을 내미는 그들을 제대로 된 법정에 세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