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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뜻밖의 선물

5월18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가끔씩 ‘뜻밖의 선물’이 우리 앞에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 전 직장생활을 할 때의 일입니다.
설립 초기 생산 라인 건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로 인해 오랫동안 심한 자금난에 허덕였는데, 어느 해였던가, 납품이 시작되는 동시에 경기도 활성화되면서 회사는 엄청난 매출 수익을 올리게 되었지요.

최고경영자는 열심히 따라준 직원들이 고마웠던지 정해진 급여나 상여금 외에 꽤 큰 성과급을 지급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목돈’, ‘뜻밖의 선물’을 손에 들고 다들 어디에 써야 되나, 행복한 고민들을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가끔씩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제 삶을 돌아보니 삶이 꽤나 팍팍하고 암울했습니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처럼 매사가 잘 안 풀렸습니다.
특별한 희망도 기대도 없이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저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저 자신을 이웃과 공동체로부터 철저하게 격리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기도하는 중에 한 단어가 제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일체유심조!’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봄날의 꽃길도, 가을날의 풍성한 결실도, 겨울의 설경도 주님께서 주셨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연히 여름날의 혹독한 더위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방식 이제 그만 떨쳐버리자.
세상은 살아볼만한 곳, 주님과 함께 하는 세상은 더 더욱 살아볼만한 세상, 이제 그만 일어나보자.”는 생각이 온 몸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정말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출근 시간이 그렇게 괴로웠습니다.
자명종 버튼을 누르면서 혹시 오늘 공휴일 아닌가, 혹시 오늘 정전이라도 돼서 출근하지 말라고 연락 오는 것은 아닌가, 별의 별 생각을 다했었는데, 그날은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자동으로 잠을 깼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그 뒤로 떠오르는 일출, 넘실거리는 바다, 매일 봐왔던 풍경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감탄까지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엄청난 체험이자 변화였는데, 그 변화는 그 누구도 아닌 성령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힘차게 활동하실 때 기적 같은 변화를 직접 여러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옥 같은 현실이 살아볼만한 현실로 변화될 것입니다.
미움덩어리였던 이웃이 사랑덩어리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선물인 성령의 도움은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목숨 걸고 열심히 기도해야 주어집니다.
충만한 영성생활의 가장 큰 독소들인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분노’ ‘질투심’ ‘완고함’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해야 가능합니다.
성경을 손에 들어야, 영적생활에 맛을 들여야 시작됩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 내면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디서도 얻지 못할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 바람이 일어도 바람에 넘어가지 않는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이 끝난 뒤에 시작되는 곳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의 결과인 잔잔한 평화와 은은한 기쁨, 진정한 화해와 용서, 일치와 나눔이 이루어지는 내 안에서 시작되는 곳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