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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 세상의 박해와 미움, 하느님의 위로와 격려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는 양떼들의 모임!

5월16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교회 공동체에 대한 멋진 정의를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박해와 미움, 하느님의 위로와 격려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는 양떼들의 모임.’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 여정에 하느님께서 분명히 우리 한 가운데 굳게 현존하심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동시에 세상과 적대자들로부터 받게 되는 멸시와 수모 역시 기정 사실입니다.
고통과 시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이지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요한 복음 15장 18~20절)

결국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지상 여정을 나아가는 동안 겪게 될 다양한 고통과 시련 앞에서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박해와 미움 앞에서 너무 분노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보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봐야겠습니다.
발끝만 바라보지 말고 멀리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며 큰 호흡을 지녀야겠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고통과 시련을 겪으신 예수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구태와 오랜 악습에 도전하는 선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본질이나 핵심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유다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얼마나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 낱낱이 고발하셨습니다.
그결과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변혁시키는 사랑의 중심이 되신 반면 유다인들은 현실에 안주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미움과 박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세상의 박해와 미움 역시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지닌 결핍과 과오, 수치스런 오점으로 인해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하느님께 충실하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변 강대국의 위협으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한 유다왕 여호사팟은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후 열렬한 기도를 하느님께 올립니다.

“하느님, 저희를 치러 온 저 큰 무리를 대적할 힘이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저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신만 바라볼 뿐입니다.”(2역대기 20장 12절)
그러자 예언자 야하지엘이 일어나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 큰 무리 앞에서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마라. 이 전쟁은 너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다.
이 전쟁에서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제 자리를 지키고 서서, 주님이 너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을 보기만 하여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마라. 내일 그들에게 맞서러 나가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2역대기 20장 15~17절)

오늘 교회에 주어지는 중요한 과제가 한 가지 있군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투쟁을 하느님의 투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생각하지 않고 나혼자 힘으로 해보겠다고 기를 쓸때, 그 투쟁은 백전백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하느님께 고정시킬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의식할 때,
교만이나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게 하느님의 도움을 청할 때, 그 투쟁은 나의 투쟁이 아니라 하느님의 투쟁이며 백전백승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