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목이 뻣뻣한 사람들

3월26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한없이 크시지만 더없이 겸손하신 분, 엄청 강하시지만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우신 주님께서 백성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향해 강력한 경고의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트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탈출기 32장 9~10절)

주님의 경고 말씀은 별것도 아니면서 목이 아주 뻣뻣한 사람들, 주제 파악하지 못하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오랜 세월 몸에 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 계명을 따르지 않고 자꾸만 과거의 몸에 밴 악습을 되풀이하던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익숙했던 과거와의 결별은 어려운 작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뻣뻣함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도래하신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인류 역사 전체와 세상만사의 중심이 되시는 분으로서, 구약시대의 판을 완전히 뒤엎으신 분,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여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명과 율법을 사랑하고 존중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던 경직되고 낡은 신앙과 정신을 완전히 바닥부터 뜯어고치신 새로운 분이십니다.

이토록 새롭고 크신 예수님이셨기에, 끝도 없이 과거에 집착하고 안주하던 유다 지도층 인사들은 도저히 그분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간절히 기다려왔던 메시아 그분께서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그들은 끝끝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예수님의 심정이 복음서에 고스란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한복음 5장 43절)

그들은 조상들이 되풀이 했던 결정적 실수를 그대로 되풀이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 역시 조상들처럼 목이 엄청 뻣뻣했기 때문입니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목이 뻣뻣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갑질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깟 알량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는 사람들입니다.
수중에 지닌 돈 좀 있다고 없는 사람들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몇몇 웃기지도 않는 희한한 사람들의 희극적인 모습을 씁쓸한 심정으로 바라봅니다.
대체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머리를 조금도 쓰지 않습니다.
그저 모자 쓰려고 달고 다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저지른 악행들을 봐서 웬만하면 분위기 파악하고 신속하고 조용하게 물러나도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제발 좀 더 이상 그 얼굴들 안 봤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그런 웃기는 인물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새 시대 새 인물!’을 외치고 다닙니다.

입만 열만 몰상식하고 개념 없는 말들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옵니다.
그들이 내지르는 천박하고 비루한 말들은 서민들의 가슴에 큰 생채기를 냅니다.

참으로 목이 뻣뻣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실체를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역사와 민족 앞에 얼마나 큰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간절히 청합니다.

그들 스스로 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無)에서 온 존재, 먼지 그리고 티끌에서 온 존재,

주님 아니시라면 단 하루도 홀로 설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지금 무한한 인내를 베풀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