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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참된 신심이란?

1월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연중 제2주간 금요일]

오늘은 교회 역사 안에, 특히 가톨릭교회 영성사 안에 큰 족적을 남기신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의 축일입니다.

그가 우리 신앙의 후예들에게 남긴 선물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며칠을 두고 이야기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비오 9세 교황님께서는 이 성인에 대해서 집회서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총명함을 칭찬할 것이며, 그의 이름이 길이 남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의 이름은 대대로 빛날 것이다. 만백성이 그의 지혜를 찬양할 것이며, 모임에서는 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할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업적 하나를 소개하면 개신교의 득세로 흔들리고 있던 가톨릭교회를 온몸으로 지탱한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강하게 몰아닥친 칼비니즘의 영향으로 온 지방이 개신교도들로 가득 찼던 샤블레 지방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생명을 무릅쓰고 가톨릭교회의 진리를 설파했으며 결국 그들 대부분을 다시금 가톨릭교회로 되돌아오게 했습니다.

그가 처음 샤블레 지방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해준 것은 폐허가 된 가톨릭교회와
수도회들이었습니다. 개신교도들은 그를 조롱거리로 삼았으며 모욕을 주고 살해하려고 했지만 묵묵히 기도하면서 그 모든 고통을 참아냈습니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꿋꿋했습니다. 수많은 저술과 설교로 한 사람 한 사람을 감동시켜 가톨릭교회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마침내 7만 2천명이나 되는 개신교도들을 하느님의 품으로 인도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얼마나 온유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는지는 다음의 일화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들이 제네바의 주교 시절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와 샹딸 수녀를 음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틈만 나면 있지도 않은 추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퍼트렸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그 어떤 법적 대처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 기도만 하셨습니다. 엄청난 모욕 앞에서도 분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동정심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장본인인 벨레라는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주교는 그에게 다가가서 손을 맞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님은 저를 음해해서 명예를 실추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신다지요? 제가 그 일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으니 제게 변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변호사님이 제 눈 하나를 멍들게 한다든지 뽑아버린다 할지라도 저는 나머지 한쪽 눈을 가지고 여전히 선생을 기쁘게 바라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 우리 교회 영성사 안에 남긴 영향도 정말 대단한데, 그의 노선은 400년도 더 지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로 연결됩니다. 그분의 영성과 삶, 신앙은 참으로 선구자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박사이기도 한 그는 총 27권에 달하는 명저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책이 ‘신심생활입문’ ‘신애론’입니다.

하느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라 인자하신 아버지 같은 분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서 당시 백성들에게 온유하고 겸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성덕의 길’은 사제나 수도자들의 전유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덕의 길이 활짝 열려있음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군인은 군인의 신분을 다함으로서, 가정주부는 자질구레한 가사 일에 충실함을 통해서, 공장 직공들은 열심히 제품을 생산함을 통해서 누구나 성덕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봉헌이요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하느님의 거처를 마련함으로써 세상 안에 살아가면서도 세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으며, 세상일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음을 일깨워주셨습니다.

“필로테아여, 생각해보십시오. 주교가 봉쇄수도원 수도자처럼 혼자 있기를 원해서야 되겠습니까? 결혼한 사람이 카푸친회 수도자처럼 돈을 무시해서야 되겠습니까? 기술자가 하루 종일 성당에 앉아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신심은 정말 어색하고 우스꽝스런 것입니다. 참된 신심은 각자에게 부여된 신원과 소명에 충실한 것입니다.”

“진주조개는 바다 속에 살면서도 바닷물을 한 방울도 먹지 않습니다. 어떤 섬 근처에는 바다 한 가운데임에도 아주 신선한 맑은 샘이 솟아오릅니다. 피로스토 곤충들은 타는 불속으로 날아들어도 날개가 불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매사에 충실하고 용맹한 사람들은 세상 안에 살아가면서도 조금도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