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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화사한 봄날이 찾아옵니다!

1월22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마르코 복음 2장 1절부터 3장 6절까지는 이른바 ‘갈릴래아 논쟁 사화’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논쟁은 예수님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갈릴래아 논쟁 사화는 중풍병자의 치유로 인해 야기된 사죄권 논쟁, 세리 레위의 부르심으로 인해 야기된 죄인들과의 친교 논쟁, 단식 논쟁, 그리고 어제와 오늘에 걸쳐 소개되고 있는 안식일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갈릴래아 논쟁 사화 중 마지막 사건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한 일로 인해 벌어졌습니다. 오늘도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또 다시 안식일 규정을 어겨가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해주신다면, 곧바로 초강력 대응조치를 취하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켠채 감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잘난 안식일 규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생명이 위독한 응급 환자의 경우에만 목숨을 구해주는 것이 허용되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습니다.

안식일 제정의 본래의 의미를 망각한 채, 엄격한 잣대만 들이대는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한 동료 인간 존재가 지금 눈앞에서 겪고 있는 큰 고통과 깊은 상처는 안중에도 없던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저 율법의 원리원칙만 적용하려는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이런 바리사이들의 오그라든 마음, 완고한 마음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오랜 세월 심연의 고통을 겪어온 한 인간 존재의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한없는 자비는 바리사이들의 경직되고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변질된 율법을 상대화시키시고 율법 제정의 원래 목적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코 복음 3장 4절)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를 통해 갈릴래아에서의 치열했던 논쟁이 마무리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거듭 머리를 맞대고 부단히 올가미를 던져가며 예수님을 몰고 갔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 앞에 반박할 여지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분노로 가득한 바리사이들은 헤로데 당원들과 합작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합니다.

오늘 우리의 손, 우리의 눈,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혹시라도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 못지 않게 오그라들데로 오그라든 것은 아닌지요? 잔뜩 경직되거나 왜곡된 것은 아닌지요? 너무나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인생을 묵상하며 드는 생각입니다.

인간만사 계속 죽어라죽어라 하지만은 않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화사한 봄날이 찾아옵니다. 기나긴 장마와 혹서가 지나가면 선선하고 청명한 가을하늘이 찾아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그랬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했었는데 기적처럼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 예수님을 만나는 행운을 손에 넣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비록 우리의 나날이 무척이나 암담하다 할지라도 언제 상황이 ‘짠’하고 바뀔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기상 악화로 파도가 넘실대어 발이 꽁꽁 묶여있다 할지라도 기다리다보면 반드시 배를 띄울 때가 찾아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며, 늘 희망하며, 그래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주님께서 친히 찾아가실 것입니다. 다정한 위로의 말씀, 너무나 감지덕지한 생명의 말씀을 건네실 것입니다.

“손을 뻗어라.”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