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본당 신부, 사목자의 일을 하는 것이란다”

“솔직하게 말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본당 신부, 사목자의 일을 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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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어제 주일날(15일) 로마 루터파 개신교회를 방문하셨는데, 그곳의 신자들과 격이 없는 대화를 나누신 것이 화제입니다. 그 질문과 답변을 옮겨봅니다. 1) 저는 율리우스라고 함 9살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어린이 전례에 참여하는 것을 진짜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분께서 행하시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제가 드리는 질문은 교황님으로 계시면서 뭐가 가장 좋으시는지요?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하단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지금까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이니’라고 묻는다면 너는 즉시 ‘과자!’라고 말하겠지, 그렇지? 그러니까 전부 다 먹어야 해! 솔직하게 말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본당 신부, 사목자의 일을 하는 것이란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 나는 그런 종류의 일들을 좋아하지 않아. 공식적으로 해야 하는 인터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지금은 공식적인 인터뷰가 이니지… 가족적인 대화를 좋아하지. 그래도 그런 공식적인 인터뷰들을 해야 해. 어쨌든 내가 뭐를 더 좋아하느냐 하면 바로 본당 신부야. 언젠가 신학교의 학장이었을 때 그 신학교에 붙어 있는 성당의 본당 신부도 겸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주일날 아이들 미사를 드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단다. 아마도 25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 전체를 조용히 있게 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한다는 것이 쉽지않았어. 하지만 나는 그 일을 좋아했단다. 네가 어린이니까 아마도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야. 너희들은 구체적이지. 아이들은 신학적인 뜬구름잡는 질문을 하지 않잖아. “이건 왜 이래요? 왜요?” 그래 난 본당신부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본당 신부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있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우지. 많이 배우고 말고. 그래서 나는 본당 신부 스타일로 교황직을 수행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봉사도 그래. 아픈 이들을 방문하고 실망과 슬픔에 빠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단다. 감옥에 가는 것도 좋아해. 내가 감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고! 아마도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옥에 갇힌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옥을 방문할 때마다 언제나 내게 스스로 이렇게 묻는단다. “왜 나는 아니고 저들일까?” 거기서 나를 위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지. 그분께서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이지. 내가 그들보다 죄가 적은 것도 아닌데 주님께서 나를 당신의 손으로 이끌어 주신 것이야. 이런 것을 마음 속에서 느낀단다. 그러니까 감옥을 방문할 때 마음이 기뻐.
교황이라는 것은 주교를 한다는 것이고, 본당 신부를 한다는 것이고, 사목자의 일을 한다는 것이야. 만일 교황이 주교를 하지 않고 본당 신부를 하지 않고 사목자를 하지 않는다면, 굉장히 지혜롭고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마음속에는 행복이 없을 거야! 질문에 답이 됐는지 모르겠구나. 2) 저는 앙케 드 베르나르디니스이고요. 우리 교회의 많은 사람들처럼 가톨릭 신자인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했답니다. 저희들은 여러 해를 행복하게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잘 살고 있지만, 신앙이 달라, 같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어떻게 해야 궁극적인 일치를 이룰 수 있겠는지요? 자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만찬을 함께 나누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기가 제게 쉽지 않습니다. 여기 함께 오신 신학자 카스퍼 추기경님 같은 분 앞에서는 특히 겁납니다! 저는 주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하신 말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나눌 때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그것을 기억하고, 흉내내고, 행합니다. 주님의 만찬이 있을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마지막 성찬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최종의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도달하는 여정에서…, 저는 묻기를 주님의 성찬을 나눈다는 것이 여정의 종점인가 아니면 함께 걷기 위한 영양보충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신학자들에게 물어봅시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나눈다는 것은 우리 가운데 차이점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같은 세례성사를 받았지 않았는가요? 우리가 같은 세례를 받았다면 우리는 함께 걸어야만 합니다. 자매님께서는 결혼이라는 여정으로 가정이라는 여정으로, 인간적인 사랑의 여정으로, 믿음을 같이 지닌 여정을 하고 있으니 깊은 신앙여정의 증거자이십니다. 우리는 같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자매님께서 스스로 죄인임을 느끼실 때, 저도 큰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자매님의 남편도 죄인임을 느끼실 것입니다. 자매님은 주님의 대전으로 나아가 용서를 청하고, 남편되시는 분도 역시 그렇게 하며 사제에게 가서 사죄를 청합니다. 이것이 세례성사를 살아있게 만드는 구제체입니다. 두 분이서 함께 기도할 때 그 세례성사는 자라나며 굳세어집니다.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이시고, 왜 이땅에 오셨으며, 뭐를 하셨는지를 가르쳐 주고 그분이 하셨던 같은 일을 할 때, 루터교의 언어든 가톨릭의 언어든 같을 것입니다. 질문하신 만찬? 자신에게 솔직하고 내가 지닌 작은 신학적인 명오로 같이 답해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보세요.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이는 우리가 걸어가도록 우리를 돕는 영양보충입니다.
저는 감리교회의 어떤 목사와 친했습니다. 48세였는데 결혼했고 두 아들을 뒀고, 그분도 이런 갈등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부인과 아이들은 가톨릭 신자이고 자신은 감리교의 목사이지요. 주일날이면 부인과 아이들이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성당으로 데리고 간 후 자기 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한 그분의 발걸음입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그렇게 했고, 지금은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셨습니다. 아주 바른 분이었죠. 자매님의 질문에 이렇게 물음을 드리는 것으로 답을 드립니다. 나의 길에서 주님의 만찬이 나를 동반하시도록 하기 위해 뭐를 해야 하지? 모든이들이 각자 대답을 해야 할 질문입니다. 제 친구 목사가 말하길 “우리는 주님께서 성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습니다. 현존하시는 것을… 여러분들은 주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자 어디에 차이점이 있습니까?” “설명이고, 해설일 뿐입니다…” 삶은 설명이나 해설보다 무척 더 큰 것입니다. 항상 세례성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의 믿음, 하나의 세례, 한 주님”이라고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로부터 이어지도록 합시다. 저는 제 권한 밖이기에 이것을 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세례, 같은 주님, 같은 신앙! 주님과 대화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