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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방교육 365일-살레시오 정신의 핵심, 사목적 사랑

예방교육 365살레시오 정신의 핵심사목적 사랑

돈보스코가 교회와 시대 앞에 내어놓은 독창적인 영성이 곧 살레시오 정신인데, 이 살레시오 영성의 핵심이요 중추는 다름 아닌 사목적 사랑이다.

사목적 사랑이란 과연 어떤 사랑을 의미하는가? 말마디 그대로 양들을 치는 목자, 그런데 그냥 목자가 아니라 양들을 끔찍이도 챙기고, 양들 하나 하나를 파악하고 있는 목자가 자신의 양떼를 향해 지니고 있는 착한 목자로서의 사랑이다.

돈보스코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보여주신 여러 다양한 모습들(치유자, 가난한 수도자,날카로운 예언자, 설교자, 따뜻한 위로자,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에 완벽히 순명하는 아들…) 가운데 특별히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안전하게 양 우리로 인도하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자신이 추구할 노선으로 선택하였다.

요한복음 10장 전반부는 착한목자의 모습에 대해 소상히 묘사되고 있는데 이 구절을 읽다보면 예수님께서 제시하는 있는 착한목자상과 돈보스코의 생애가 완벽히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아침이 밝으면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내어 양질의 풀이 가득한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착한 목자는 항상 양들과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양들도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착한 목자는 양들 앞에 서서 그들을 인도하고 양들을 그만을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착한 목자인데,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착한 목자는 양들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다.그들의 이름, 나이, 특징, 상처, 건강상태, 성격, 아픔, 고민… 그리고 양들도 자신의 목자가 자신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요한복음 10장 1~21절 참조)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목적 사랑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냥 통속적 사랑, 보통의 사랑이 아니라 여간한 마음으로 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이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녀야만 사목적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사목적 사랑을 실천하는 목자는 그의 내면이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추구한다.

사목적 사랑은 대충대충 사랑, 적당한 사랑, 뜨뜨미지근한 사랑이 절대 아니다. 뜨거운 사랑이며 역동적인 사랑이다. 청소년들의 영혼은 반드시 구원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내가 착한 목자를 본받아 적극적으로 그들 가운데 투신하며 착한 목자가 자신의 양떼를 위해 목숨을 바치듯이 목숨을 걸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랑이다.

토리노시를 떠돌던 수많은 청소년들을 향한 돈보스코의 사목적 사랑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그들의 영혼 구원을 향한 염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돈보스코는 어떻게 하면 그들이 현재 처해있는 비인간적 생활의 개선할 수 있을까? 돈보스코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얼굴에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아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인생에서 불행의 사슬을 끊고 행복의 길로 인도할까? 하는 고민을 거듭했다. 언제 어디서든, 무얼 하든, 누구를 만나든 오로지 청소년들만을 생각했던 돈보스코, 한 마디로 청소년들에게 미쳐있던 돈보스코를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살레시안은 다른 무엇에 앞서 청소년들을 향한 사목적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다. 살레시안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 고린토 5장 14절)라고 외치며 양떼인 청소년들 사이로 뛰어드는 사람입니다. 살레시안은 돈보스코를 따라 “나에게 영혼을 주십시오. 다른 모든 것을 다 가져가십시오!”라고 외치는 사람입니다.

다행히 돈보스코께서 생존해계실 때 사진기가 발명되어 상당수의 돈보스코 사진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사부이자 창립자이신 돈보스코의 살아생전의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돈보스코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 사진으로 비춰진 돈보스코의 모습은 깔끔하게 정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체로 피곤에 찌든 모습, 초췌한 모습, 외모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은 모습이다. 이것은 무엇은 의미하는 것인가, 생각해봤다. 그는 살아생전 하느님 나라, 영혼들의 구원, 그가 금쪽 같이 사랑했던 수많은 청소년들이 주관심사였지, 그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돈보스코의 생애는 사목적 사랑으로 활활 불타올라 청소년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 생활은 완전히 희생시킨 위대한 생애였다.

돈보스코의 사목적 사랑은 오늘날 우리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과연 어떤 사랑을 실천해야 제대로 된 사목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일까? 돈보스코는 이 부분에 대해 살아계실 때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제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다가서고, 어떻게 그들을 사랑하는지 잘 지켜보십시오. 여러분을 저를 그대로 모방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가 실천한 사목적 사랑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일회적인 사랑, 간헐적인 사랑, 중지된 사랑이 아니라 진행 중인 사랑, 움직이는 사랑이었다. 소극적이고, 주저하는 사랑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랑이었다. 머리만의 사랑, 생각 만으로의 사랑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랑,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사랑이었다. 마음속에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을 빨리 청소년들에게 펼치기 위해서 다급한 사랑, 열렬하고 관대하고 기쁨에 넘치는 역동적인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