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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니노 발리에리(Nino Baglieri)” 시복시성의 길로

니노 발리에리(Nino Baglieri), 시복시성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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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돈보스코재속회(CDB) 회원인 니노 발리에리의 선종 5주기를 맞아 그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크게 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살았던 시실리 노토 교구 대성당에서 공식적인 시복시성의 과정이 시작하는 전례가 열린다. 그리고 주일날에는 그가 태어난 모디카에서 시실리 SYM(살레시오청소년운동)의 축제가 그의 성덕을 기리는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한 가운데 펼쳐진다.

가장 절정이 될 순간은 현지 시간으로 토요일 오후 5시, 노토 대성당에서 펼쳐질 시복시성 운동 개시를 위한 공식적인 청원 전례로 안토니오 스탈리아노 주교가 주례를 맡고 차베스 총장 신부님과 살레시오 가족의 시성시복 청원관 피에르루이지 카메로니 신부 등이 참가한다.

청원관은 요청 주체인 CDB의 이름으로 교구장인 안토니오 스탈리아노 주교에게 청원서(Supplex libellus)를 제출할 것이고, 이어 총장 신부님이 니노 발리아리 삶에서 교회를 위한 뛰어난 성덕의 증거들에 대해 강론할 것이다. 살레시오 영성의 방식에 따른 충실한 삶이고 삶에 대한 사랑으로서 깊은 교회 의식을 지녔으며 특히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인식이 깊었다.

시성을 위한 공식적인 과정은 청원관의 청원을 수용한 교구장이 관구 주교들의 심의 후 공적선언 (Editto)을 통해,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진실을 탐구하는 데 유익한 정보들을 수집 하도록 하여 시복 시성을 위한 장애가 없는가(Nulla osta)를 판단하는 성청의 심의를 받는다. 이 단계들을 거친 후 그의 저작들과 그와 관련된 문서들을 심사하는 공식적인 교구 청원이 시작된다.

그가 살았을 당시에도 이미 주변의 사람들이 ‘모디카의 성인’이라고 불렀던 니노 발리에리에 대한 청원은 교회법의 제한규정에 따라 정확히 그의 선종 5년이 지나자마자 개시된 것으로서, 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보통의 경우 여러 해가 더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니노 발리에리를 기리는 축제는 주일까지 이어진다. 팔라릿짜 모디카라는 실내체육관에서 총장신부님을 중심으로 2천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성인되기 위해 달리자, 하느님의 뜀박질꾼 니노 처럼!”이라는 주제로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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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 발리에리의 생애

1951년: 시실리 모디카에서 출생, 초등학교 졸업 후 건축현장의 일을 배움

1968년 5월 6일: 조적공으로 일하다 17m 높이의 거푸집에서 떨어져 전신마비가 됨

1970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희망을 완전히 잃고 자신의 생가로 돌아가 10년간 칩거

1978년 3월 24일(성금요일): 내적 깨달음을 느끼고 성서와 신앙에 몰두하며 글을 쓰기 시작 “고통으로부터 기쁨으로”라는 책을 발간

1982년 5월 6일: 살레시오 협력자가 됨

2004년 8월 31일: CDB 종신서원

2007년 1월 19일: 살레시오 가족 영성의 날 참가를 위해 로마까지 여행, 자신의 신앙에 대한 감동적인 간증.

2007년 3월 2일: 선종.

“하느님을 향한 내 마지막 여행은, 그분을 뵙기 위해 달려갈 것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영웅적인 성덕의 증거로 많은 젊은이들 마음 안에 하느님 사랑의 불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