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화강생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바는?

육화강생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바는?
아기 예수 탄생이 있기 까지 마리아와 요셉이 치러야 할 희생과 노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마리아는 해산할 때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출산을 목전에 둔 산모들의 심정, 누구나 다 비슷할 것입니다. 나를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가슴 설렘, 내 아기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출산의 고통…
이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협조입니다. 산모에게 스트레스를 절대 주지 말아야 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최대한 도와주어야 하고, 힘든 여행이나 일은 절대 금물입니다. 따뜻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상황은 정 반대였습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하필이면 마리아가 해산하기 직전 모든 식민지 백성들에게 호적 등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가 조사에 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셉의 고향은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곳으로 나자렛에서부터 약 170Km나 되는 먼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요즘 같으면야 170Km 아무 것도 아닙니다. KTX 타면 한 시간도 안 걸려서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당나귀 한 마리에 만삭인 마리아를 태우고 뚜벅뚜벅 걸어서 그 먼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힘겹게 베들레헴에 도착해서는 또 어땠습니까? 작은 고을 베들레헴은 전국각지에서 호적 등록을 하러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요셉이 백방으로 뛰어다녀봤지만 마리아를 눕힐 방 하나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출산의 기미가 보이자 다급했던 요셉은 마리아를 마구간으로 안내했습니다. 구세주이자 만왕의 왕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마구간에서 탄생하셔서 말들의 여물통인 구유에 누우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강생 사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좋은 여건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인간 세상의 비정한 현실, 혹독한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탄생 과정에서부터 우리 인간의 가난과 비참과 고통과 한계에 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하느님 측의 강력한 의사표현이 마구간 탄생인 것입니다.
찬바람 숭숭 들어오는 마구간, 말과 소들의 콧김을 맞으며 이 세상에 강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이러한 육화의 방식이 우리 인류에게 전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우리 역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가끔씩 우리에게 다가오는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나 참혹한 인간 조건도 삶의 일부로 수용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부정적인 체험들을 지속적으로 긍정화시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미 없어 보이고 때로 구차스러워 보이는 세상사에 끊임없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라고 요청하십니다.
결핍투성이며 한계투성이인 우리 인간들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구세주의 강생 사건 앞에 우리 마음을 활짝 여는 일입니다. 이 땅에 육화하신 하느님이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깊이 묵상하는 일입니다. 어둠과 죄 속에 앉아있는 우리 인류에게 큰 빛이 되어 오신 아기 예수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