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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야곱 신부의 편지>

종신형을 받아 바라는 것도, 하고자하는 것도 없는 어둠 속에 갇힌 이를 초대하는 야곱 신부의 편지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핀란드 영화로 클라우스 해로 감독이 연출하는 72분 남짓 잔잔한 영화는
빛과 어둠을 교차시키며 그리스도인이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영상이다.

야곱 신부는 마음의 짐을 담아 보내온 편지를 받아 읽고 기도해주며 답장을 보내는 일을 사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레일라는 눈이 보이지 않는 신부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답장을 받아 쓰는 일을 도와주게 된다.

“야곱 신부님 편지 왔습니다!” 우편 배달부의 즐거운 목소리에 생기를 얻으며 사제로서의 마땅한 일에늙고 시력조차 잃었어도 야곱 신부는 충만한 기쁨을 살아간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4-7)

“거기 있는 것들은 모두 간절한 기도를 담은 편지들입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세요?”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기를 바라고

우리는 그들을 하느님께 다가가게 하지요.

그들을 굽어보는 어떤 존재가 있으며

하느님의 아들 딸 중 누구도 쓸모없거나 잊히지 않았음을

사람들이 알고 느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편지 하나 하나는 모두 가치있고 중요한 것들입니다.

저는 가슴으로 편지를 읽습니다.

저는 편지를 가슴에 담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기를 간청합니다.”

레일라가 귀찮아서 무심코 편지들을 거의 버렸는데

어느 날부터 정말 편지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연로하고 눈 먼 사제는

편지가 반드시 올 거라는 믿음으로 견딘다.

사명의 완수를 위하여

누추하기 그지없는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노사제의 모습에서 

충실함이 무엇이지를 느끼게 된다.

젊을 때는 교회의 일을 분주하게 하며 활기찬 삶을 살았을 한 사제가

연로하고 영혼 구원의 구체적인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절박함에서 자기와의 싸움에 직면하게 된다.

사명의 시간이 다하고

아버지의 집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갈 시간이 다가오자

야곱 신부는 다른 성경 말씀은 기억하지 못하고

1 코린토 13장 사랑의 송가만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집에 가기 위하여 필요한 단 하나의 말씀이

사랑이라는 듯 감독의 의도가 읽혀진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좀 도와주시겠어요?”

자기와의 싸움에서 야곱 신부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여기 있는 이 편지들 … 이 편지들은 말입니다.

나는 이 일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반대였나봐요.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나 봅니다.

나를 지탱하게 하려는 주님의 방법이었던 거죠.

나를 집으로 이끄는 방법이요.”

감독은 절묘하게 연출하고 있다.

눈을 뜨고도 사면을 받고도 어둠 속에 사는 이와

눈이 보이지 않아도 빛 속에 사는 이와의 만남.

그리고 이 만남은 서로를 도와 서로를 구원하며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게 된다.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총의 방법에 공감하게 해준

이래서 명감독인가 보다.

오지도 않은 편지를 왔다고.

레일라의 고해성사적 마지막 편지를 들으며

한 영혼을 구하며

한 사제로서의 귀한 직분을 이행하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야곱 신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치명적인 일을 저지른 자신은 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감옥에

 빛을 주고 자유와 해방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야곱 신부가 돌아간 하늘 나라 집에서

우리의 편지를 기다리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