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
종합병원에서 사목활동을 하시는 신부님께서 이런 나눔을 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근무하다보니 머릿속은 늘 투병중인 환자들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고…그래서인지 복음서를 펼쳐도 환자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고…일종의 직업의식 인가보다고…
루가 복음사가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원래 안티오키아 사람으로 직업이 의사였습니다. 그 역시 예수님의 여러 행적들 가운데 의사로서의 모습, 치유자로서의 모습에 유달리 시선이 많이 갔을 것입니다. 루가 복음사가는 복음을 기술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결핍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향한 따뜻한 동정심과 깊은 측은지심으로 가득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래서 루가 복음서를 읽다보면 그 아무리 죄 투성이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기괴한 몰골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갈 때 까지 가버린 구제불능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환대하시고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는 자비의 하느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오은 아늑한 기운, 부드러운 손길, 따뜻한 체온, 정겨운 미소가 루가 복음 구석구석에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얼굴만 봐도 누구인지 다 아는 죄 많은 여인이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그 위에 향유를 발라드렸습니다. 둘러서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이거야 말로 스캔들 중에 대 스캔들이라며 웅성거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십니다. 진심으로 통회하는 여인의 마음을 굽어보시고 그에게 새 삶을 되찾아주십니다. 우리 인간의 그분의 자비와 사랑은 죄와 과오를 능가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루카복음 8장 36~50절). 뿐만 아닙니다. 루카 복음 15장을 한번 보십시오.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아버지가 건강히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미리 챙겨 먼 길을 떠나갔다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둘째 아들, 오래지 않아 완전 상거지가 되고만 그는 아버지집의 품팔이꾼으로라도 살아보려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멀리 아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환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이지 감동 그 자체입니다(루카복음 15장 11-32절). 정말이지 제 마음을 확 끄는 대사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죄인들의 대명사, 그 죄인들 가운데서도 우두머리격인 세관장 자캐오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자캐오는 하류 인생의 대표 격인 인물, 요즘으로 치면 한 지역을 담당하는 조직폭력배 보스로서 줄곧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왔던 인물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집에 머무르시며, 그와 함께 식탁에 앉으십니다. 이 특별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 육화강생의 가장 뚜렷한 목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인 아흔아홉이 아니라 길 잃고 방황하는 죄인 한 사람을 위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큰 과제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에 대해 명확하게 실체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가장 쉬운 길은 루가 복음서를 펼치는 일입니다. 루가 복음사가가 아름답게 그려낸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묵상하는 일입니다. 가끔 이런 묵상을 해봅니다. 내가 청춘과 인생을 바쳐 따르는 하느님 아버지는 과연 어떤 아버지일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A급 아버지, 세상 사람들이 다들 칭송하는 모범적인 아버지, 자녀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특별한 아버지, 그 아버지보다 천배 만 배 우리를 향한 가득 하신 분, 우리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당신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모습이 우리 하느님의 실체가 아닐까요?
이렇게 우리 죄인들을 향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복음서를 통해 정확하게 기술한 루가 복음사가의 헌신과 봉사가 참으로 고마운 하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