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교육 365일-사목적 열정
예방교육 365일-사목적 열정
우리 삶에 ‘열정’이란 단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에 열정이 식어버리면 모든 것이 다 시들해집니다. 우리 내면에서 열정이 사라져버리면 우리는 순식간에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열정이 사라질 때 우리 한 평생도 고작해야 쓸모없는 시작과 무익한 종말 사이에서 소모되는 시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열정이 살아날 때, 아니 활활 타오를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인간으로 참 삶을 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따분한 생존의 연속이 될 것인가, 하느님 안에 하루하루 흥미진진한 충만한 날들이 될 것인가는 바로 이 열정 유무에 달려있습니다. 돈보스코의 한평생은 열정으로 활활 불타오르던 뜨거웠던 생애였습니다. 그런데 돈보스코의 내면에서 활활 타오르던 뜨거운 열정의 대상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이었습니다.
돈보스코께서 평생에 걸친 삶의 지침으로 삼았던 모토가 있는데, 그 모토는 아직도 저희 모든 살레시오 회원들의 삶의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라틴어로 이렇습니다. “Da mihi animas cetera tolle.”(나에게 영혼을 달라. 다른 모든 것은 다 가져가라) 돈보스코는 ‘한 청소년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에게도 절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말씀하시면서,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을 저희 후배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을 실제 삶 안에서 명확하게 구현하였습니다.
한 청소년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났던 돈보스코였습니다. 이런 스승의 모범을 따라 어떤 살레시오 회원은 잠을 잘 때도 휴대폰을 항상 끼고 잠을 잡니다. 혹시라도 집나간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경우 신속히 출동하기 위해서. 그리고 실제로 새벽 2시건 3시건 밤거리를 헤매던 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즉시 몸을 일으킵니다. 단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서. 영혼 구원을 향한 돈보스코의 열정이 어디서 도래했는가 묵상해봅니다. 아마도 십자가상 예수님으로부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십자가형에 처해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몇 마디 말씀을 남기시는데, 그 중 하나가 “목마르다”였습니다. “목마르다”는 예수님의 신음소리를 들은 한 병사는 해면을 긴 작대기 끝에 묶고, 거기다 신포도주를 잔뜩 적셔 예수님의 입에다 대어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맛을 보는 둥 마는 둥 하시고는 마침내 “이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십자가상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목마르다”고 외치셨는데, 과연 무엇에 목마르다는 말씀이겠습니까? 갈증이 나기는 나는데, 물에 대한 갈증보다는 영혼 구원에 대한 갈증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영혼을,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영혼을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안타까우셔서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병사는 착각을 해서 신포도주를 그분 입에 대어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마르다”는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들의 영혼에 목마르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성인(聖人)들이 공통적으로 지니셨던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간절히 염원했던 것,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던 것은 다름 아닌 세상 모든 영혼들의 구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돈보스코 성인의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잘 드러났습니다. 돈보스코는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와 역량과 달란트를 최대한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돈보스코는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 협력자회 창립, 수많은 오라토리오의 최종 책임자, 인쇄소 사장, 대성전 건립자, 학교 교장이 되었고, 수많은 저술과 강연, 여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주변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하루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돈보스코를 누구보다도 존경했던 비오 11세 교황께서는 돈보스코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돈보스코의 삶은 한 마디로 순교의 삶이었습니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막중한 일에 둘러쌓인 순교자의 삶이었습니다.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의심이 갑니다. 그 많은 일을 동시에 해냈다는 것은 정말 믿기가 힘듭니다.” 특히 돈보스코의 생애 마지막 4년은 젊은 시절보다 더욱 뜨겁게 불타오른 순교자적인 세월이었습니다.
그는 선종 4년 전인 1884년부터 서거일인 1888년 1월 31일까지 즉 69세부터 72세 사이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70세 전후로 돈보스코의 건강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기력이 떨어져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진료를 끝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 100살쯤 되어 보이는군요.” 돈보스코는 시력 뿐만 아니라 다리 부종, 폐를 비롯한 여러 장기가 손상된 나머지 당연히 입원치료를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는 극구 특별한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거듭되는 의사와 형제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살레시오회 사업의 확장을 위해 무리가 되는 여행을 감행했습니다. 84년 3월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이어서 곧 바로 4~5월에는 로마에 체류했습니다. 86년 4~5월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머물렀고, 그해 9월에는 밀라노, 그리고 돈보스코 생애 마지막 여행(로마 예수 성심 성당 축복을 위한)이 된 로마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심각한 병자의 몸이었지만 돈보스코는 단 한명이라도 더 가난한 청소년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머지않아 누군가가 자신의 사업을 이어받아야 할텐데, 그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모금여행을 떠났습니다. 점점 늘어가는 살레시오 회원들이 예방교육을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주기 위해 마지막 남아있는 에너지를 모두 다 쏟아 부었습니다.
청소년 영혼 구원을 위한 돈보스코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잘 드러내는 돈보스코의 각오입니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해 공부하고, 여러분을 위해 일하며, 여러분을 위해 살고, 여러분을 위해 나의 생명까지 바친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돈보스코 사후 후계자가 된 돈 루아의 증언입니다. “그분은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단 한걸음도 내딛지 않았고,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일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청소년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