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소연하는 고민꺼리가 한 가지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현존 체험 문제입니다. 용광로처럼 뜨겁다는 하느님의 사랑, 한없이 감미롭고 따뜻하다는 아버지의 자상한 손길, 살아계신 예수님의 생생한 현존을 느껴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내게는 너무나도 요원한 일, 내게는 평생 해당되지 않는 체험 같아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이 지극히 형식적이고 타성에 빠져있다면, 감동이나 재미가 하나도 없다면, 신앙과 삶이 철저하게도 분리되어 있다면,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신속히 찾아내야 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성령과의 친교 부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과의 친교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 안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인가, 아니면 죽어있는 신앙인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점은 아무래도 성령과의 친교 여부입니다. 한 사람의 내면과 영혼, 일상의 삶 안에서 성령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시며, 활발히 활동하시면서 그의 삶을 인도하실 때, 그의 신앙, 그의 삶은 진정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령의 존재, 성령의 개념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다른 무엇에 앞서 성령은 바람 같은 분이십니다.
인간과 세상의 성화를 위해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영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기압골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바람이 불듯이 사랑으로 충만한 성령께서는 사랑이 결핍된 곳을 향해 움직이십니다.
죄 가운데 앉아있는 사람에게 회개의 바람을 일으키십니다. 병으로 고통당하는 환자에게 치유의 바람을 선물로 주십니다. 슬픔 속에 잠겨있는 사람에게 기쁨의 바람을, 죽음을 향해가는 영혼에게 생명의 바람을 보내십니다. 결국 성령은 사랑과 희망,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바람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숨결입니다.
바람을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습니다. 바람이 어떻게 부는가에 따라 우리의 태도를 결정해야 합니다. 바람이 잔잔할 때 고깃배를 띄웁니다. 적당한 바람이 일 때 요트를 타야 합니다. 강한 모래바람이 불어올 때는 고개를 돌려 피해야 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온 몸으로 그 바람을 느낍니다.
성령의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떻게 불어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언제나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기 위한 바람입니다. 때로 강하더라도, 때로 더운 바람이더라도, 때로 폭풍우를 동반한 태풍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내에서 문을 창문을 꼭 닫은 상태에서 오랜 시간 고기를 구워 먹어보십시오. 답답하고 비릿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방에 달린 모든 문을 활짝 한번 열어보십시오. 순식간에 집안 분위기가 바뀔 것입니다. 느끼하고 비릿하고 답답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도 상쾌하고 신선한 분위기로 변화될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짙은 회색빛이던 우리의 일상을 화사하고 따뜻한 색깔로 바꿔놓으실 것입니다. 울음대신 웃음을, 죄 대신 화관을, 비탄 대신 춤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죽어가던 우리의 신앙생활을 거두어가시고 활기와 생명력으로 가득 차게 해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