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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매년, 그리고 수십 번도 더 부활절을 맞이하지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 듯 특별한 감흥이 없이 밋밋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약간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내 삶에 과연 어떤 의미인지? 내 안에서 죽음 체험과 부활 체험이 있었는지?

지난 세월 돌아보니, 주님께서 제게 각별한 은총을 베푸셨던지, 제 신앙 여정 안에 이런저런 작은 죽음 체험, 그리고 작은 부활 체험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입니다. “이렇게 벌써 내가 시드는구나, 아직 채 피어나지도 못했는데, 청춘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억울해서 어떡하지?” 사실 당시 저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느님 참 묘하시더군요. 죽어가는 저를 이렇게 그냥 두시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구나, 싶었는데, 그 절박하던 순간 주님께서는 제게 누군가 한 존재를 보내주시더군요.그분을 통해 세상 따뜻하고 자상한 주님의 손길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따스한 손길이 저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오게 하더군요.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삶 속에 죽음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병고, 상처, 실패, 시련… 일종의 작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작은 죽음에서 헤어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또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릴 때, 어느 순간 하느님께서 작은 부활 체험을 하게 해주십니다.

하느님, 참 묘한 분이십니다.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사방이 가로막힌 극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성금요일 오후 골고타 언덕 체험을 하게 됩니다. 고통이 너무 극심해 도대체 하느님이 어디 계시는가? 당신이 계시다면, 어찌 이리 큰 시련을 주시냐고 울부짖습니다.

울부짖는 가운데서도 우리가 취해야 할 중요한 태도 하나가 있습니다. 울부짖는 가운데서도 우리의 시선을 이쪽저쪽으로 돌리고 또 돌려야 합니다. 더 큰 고통 겪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삶 이쪽저쪽을 살펴 봐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열어두신 새로운 문 하나가 어디에 있는지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 전례도 그렇게, 우리네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때로 우리 삶이 사순시기의 연속인 듯하지만, 잘 견뎌내다 보면 반드시 부활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삶이 마냥 기쁨의 연속만이 아닙니다.

부활 시기에 이어 연중시기가 따라옵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계속됩니다. 그 일상도 지극히 소중합니다. 충실히 하루 하루 살아가다보면 어느새 또 다시 대림시기가 찾아오고, 기쁨 충만한 성탄시기를 맞이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전례력입니다.

기쁨과 환희의 시기에는 겸손하게 고통과 십자가의 때를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고통과 십자가의 시기가 다가오면 반대로 영광과 축제의 시기를 희망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우리 가톨릭 전례인 것입니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낙담한 얼굴로 엠마오를 향해 걸어가던 제자들 사이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슬그머니 끼어드십니다. 함께 길을 걸으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십니다. 차근차근 설명해주시고, 자극도 주시고, 동반해 주십니다.

오늘 이런저런 고통과 시련 속에 휘청거리며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끼어드실 것입니다. 힘을 주시고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자극도 주시고 격려도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