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은 언제나 초 긍정적 시선이요, 초 낙관주의적 시선입니다!
8월 19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개념 있는 행동이나 예의바른 처신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직 이성적 사고나 판단 능력보다는,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큽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바라볼 때, 요란스레 예수님 앞에 등장한 어린이들이 무척이나 성가셨을 것입니다. 안그래도 계속되는 복음선포 활동으로 격무와 상습피로에 시달리고 계시는 스승님이신데,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일을 수행하셔야 할 스승님이신데, 개념도 예의도 없는 아이들이 몰려오니 짜증이 났던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 가까이에서 군중들의 질서 유지 담당 역할도 수행했었던 제자들이기에, 자연스레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사전 약속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면 어떡합니까? 지금 스승님께 몹시 바쁘시니, 빨리 아이들 데리고 돌아가십시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본 예수님께서 크게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 14)
우리 가톨릭교회는 예로부터 하느님 앞에 선 한 인간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자세로 어린이의 예를 들어왔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의심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의 그런 ‘의심 없는 믿음’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전적인 신뢰와 단순한 의탁을 하느님 나라 입국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십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든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 입국은 불가능하다거나 요원한 것일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니고있는 삶의 근본적인 태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 세상과 자연을 향한 강한 믿음과 신뢰심, 깨끗한 마음과 단순성, 솔직함과 겸손함을 지닌다면, 하느님 나라는 결코 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간 존재에 대한 극진한 존중과 배려가 눈에 띱니다. 그분께서는 시대를 앞질러 인권의 가치와 소중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당시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던 어린이들, 그들에게도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 영적 차원에서 그들이 지닌 우월성을 눈여겨보십니다. 그들의 천진난만함, 영적인 순수함, 맑은 영혼의 가치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 못지않게 결핍 투성이요, 한없이 나약해 보이는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무리 비참하고 죄투성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은 언제나 초 긍정적 시선이요, 초 낙관주의적 시선입니다.
그러한 주님의 관대하고 부드러운 시선을 오늘 병든 우리의 영혼을 재조명하고 일어서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숱한 죄와 불충실로 인해 부끄러운 우리지만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계십니다.
“그대의 인생은 아주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대의 인생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더 존귀합니다. 그대는 내게 정말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대가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에 걸맞은 성(聖)스런 삶을 살아가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