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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님의 여장 훈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우리 교회의 모습!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돈이라는 것, 참 묘한 존재입니다. 어느 정도 지니고 있어야, 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품위를 지킬 수 있고, 동료들과의 친교도 나눌 수 있고, 친척들이나 가족들에게 인간도리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복음 선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청소년 사목을 활성화시키고자 한다면 재정적 안정성은 필수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는데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가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만 한다면, 아무런 결실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맛있는 간식도 챙겨가야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관심을 표명할 것입니다. 신나게 찬양할 수 있는 찬양 사도단도 구성하려면 악기나 음향 시스템도 마련해야 할 것이고, 끝나면 식사라도 제공해야 힘이 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무나도 당연히 실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 활동을 떠나는 제자들을 향해 수중에 땡전 한 푼 지니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

예수님의 지나친 강조는 아마도 나약한 우리 인간의 실상을 잘 파악하고 계셨기 때문이리라 여겨집니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순식간에 가장 본질적인 사명인 복음 선포가 뒷전이 됩니다. 통장 잔고가 많다 보면 자연스레 어디 뭐 좋은 거 없나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당시 여행 중에 강도나 산짐승들을 만날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방어용 지팡이 하나는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생존 수단인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긴 여행길에 많은 돈은 아니어도 만일을 대비한 비상금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비상금 한 푼 조차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여행길에 오르는 사도들에게 럭셔리한 부자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떠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전도 여행길에 오르는 사도들이 자신의 힘이나 세상의 힘을 믿기 보다는 주님 섭리의 손길에 맡기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여장 훈시와 유사한 말씀이 ‘열두 사도의 가르침’ 11장 6절에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도가 떠날 때는 다른 곳에 유숙할 때까지 필요한 빵 외에 다른 것은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사도가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교우들의 희사나 후원을 마다하고 스스로 천막 짜는 노동을 해서 생활비와 전도 여행 경비를 마련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오늘날 우리 교회와 수도회를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여장 훈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의 부유한 모습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청빈의 삶, 무방비의 삶,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떠돌이로서의 삶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히 정착하고 안주했으며, 충분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복음적 청빈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몇몇 수녀회 수녀님들을 바라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지닙니다. 그분들은 가장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들보다 덜 일하고, 덜 고뇌하고,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생활을 큰 죄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매년 연말이 되면 무조건 공동체 통장 잔고를 제로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남은 돈을 흥청망청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부로도 보내고, 더 어려운 곳으로도 보내는 것입니다. 저희 공동체도 그분들 따라 매년 6월 말, 12월 말이면 잔고를 제로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사목 활동 지역은 언제나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살아가는 거주 지역입니다. 그 지역이 개발되어 부촌으로 탈바꿈하면 아무 미련없이 또 다른 가난한 지역으로 떠나갑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