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으니 사랑받습니다!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운전 중에 작고 하얀 잡견 하룻강아지를 만났습니다.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 한가운데서 뭔가 냄새를 맡고 있었습니다.
차를 멈추고 기다리고 있던 저는 안 되겠다 싶어 갓길에 차를 주차 시켰습니다. 녀석에게 다가갔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녀석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야! 너 이름은 모르지만, 여기 도로 한가운데서 이러고 있다가 큰일 난다. 앞으로 절대로 도로 한가운데로 나오면 안 된다. 알았지?”
그러면서 녀석을 덥석 품에 안고 걱정스런 눈빛의 어미 개에게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 작고 귀여운 강아지, 눈에 쌍꺼풀까지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면서 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작으니 사랑받는구나!’
아마도 이런 공식은 하느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요?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싶다면, 그분 품에 푹 잠기고 싶다면, 그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작은 야생화처럼 작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는 것이 아닐까요?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요? 탄탄대로가 아니라 좁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성인이 한 분 계십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좁은 길의 성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입니다. 그녀의 삶이 마치 깊은 산속 외딴곳에 홀로 피어난 아름다운 한 송이 작은 꽃 같다고 해서 ‘소화(小花)’ 데레사라고도 불립니다.
언뜻 보기에 그녀의 생애는 성인(聖人)이 되기에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1873년에 태어나셨다가 1897년에 돌아가셨으니 불과 24년간의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성덕을 쌓기에 충분한 시간과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 그 나이의 다른 젊은이들 바라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짧디짧은 수도 생활의 연륜, 그것도 봉쇄수녀원 안에서, 그마저도 지병으로 골골하면서…도무지 대단한 뭔가를 해낼 조건이 아닌 그녀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나 웬걸, 데레사는 자신의 탁월한 봉헌 생활을 통해 나이와 연륜이 성덕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그녀를 그 어떤 성인보다 크게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빛나는 성덕은 온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교회는 봉쇄 수녀회 수도자였던 그녀를 전 세계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녀가 개척한 성덕의 길은 대체로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극한 겸손, 복음적 단순함,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앙, 이 세 가지 요소는 결국 사랑으로 통합되었습니다.
데레사는 하느님을 마치 사랑하는 연인(戀人) 대하듯 대했습니다. 그녀가 하느님과 주고받은 대화 곧 기도는 마치도 너무 사랑해서 죽고 못하는 연인들끼리 주고받은 연서(戀書)같았습니다.
그녀는 하느님 앞에 언제나 한 송이 작은 숨은 꽃이길 원했습니다. 그녀가 개척한 성덕의 길은 ‘작은 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사코 작은 오솔길만을 걸었던 그녀를 구원의 빛나는 대로로 안내하셨습니다.
그리고 작디작은 그녀를 당신의 넓고 따뜻한 가슴에 꼭 안아주셨습니다. 숨은 것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녀 특유의 빛나는 작은 길을 온 세상 사람들 앞에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