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고 애통해하며 보내기에는 남아있는 우리의 날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2월 19일[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추운 날씨에 일주일간 계속된 큰 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젊은 형제들과 젊은 자원 봉사자들이 너무 고마워서 당시 유행하던 고기부페집에 들어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다들 한참때인 젊은이들이어서 그런지, 얼마나 맛있고 야무지게들 먹던지, 보고 있는 제 마음이 다 흐뭇해졌습니다. 저는 고기 몇 점 먹지 않았지만 그들이 먹고 있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십여명이 우르르 들어갈 때만 해도 엄청 환영하시던 사장님이셨는데, 내어놓는 족족 초토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막 화를 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방에서 투덜거리는 말씀을 제가 듣고 혼자서 엄청 웃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지난번 레스링 선수들보다 더하다!”
잔치에 초대한 주인 입장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아무래도 초대받은 사람들이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겠지요.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칭찬하고 정말 잘 먹었노라고 감사를 표할 때일 것입니다. 잔뜩 차려진 음식 앞에 손님들이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정신 줄 놓고 먹을 때 주인도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신이 날 것입니다.
숱한 고민과 갖은 정성 끝에 이런저런 음식을 잔뜩 차려놓았는데, 어떤 사람이 깨작깨작 먹는다든지, 요즘 다이어트중이라며 한 젓가락만 먹고 딴청 피운다든지, 요즘 금식기도 중이라며 아무리 음식을 권해도 고개를 흔든다면 초대한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육화강생은 어쩌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인간 각자를 위해 준비한 풍성한 천상잔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도래로 인해 이제 구약시대는 종결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신약시대는 한 마디로 잔치의 순간입니다. 축제와 환희의 기간입니다.
이토록 흥겨운 순간, 보속과 단식, 눈물과 통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토록 은혜로운 기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잔치를 만끽하는 것입니다. 흥겹게 춤추며 잔치를 즐길 일입니다.
구세주 하느님의 우리 각자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 감격하면서 즐기는 기간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단식은 지금이 아니라 다른 때 하라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오 복음 9장 15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혼인잔치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이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단식 시기의 적절성에 대해서 강조하십니다.
조만간 신랑을 빼앗길 날,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될 때는 단식해야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시게 되면, 너무나도 당연히 혼인잔치나 축제는 재개(再開)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처럼 의무적이고 형식적인 단식 행위로는 부족합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기꺼이 참여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과 함께 기쁘게 죽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이루어지는 단식이야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실 단식이며, 이번 사순 시기에 필요한 단식입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보내기에는 남아있는 우리의 날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남아있는 삶을 최대한 만끽해야겠습니다. 기쁨과 감사, 찬미와 사랑의 날로 하루하루를 장식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