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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날 찌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냐?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남긴 언행은 너무도 파격적이고도 의미심장한 것이어서 두고두고 사람들 사이에서 희자되고 있습니다.

한 농부와의 대화입니다.
“옳은 말을 하다 보면 누군가 자네를 칼로 찌를지도 몰라. 그럴 때 어떻게 하겠어? 그땐 말이지, 칼을 빼서 자네 옷으로 칼에 묻은 피를 깨끗이 닦은 다음 그 칼을 그 사람에게 공손하게 돌려줘. 그리고 ‘날 찌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고생했냐’고 그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해주라고. 거기까지 가야 돼.”

이러한 그분의 생각은 당신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철저하게 실현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시골 아낙네가 장일순 선생님을 찾아와 딸 혼수 비용으로 모아둔 돈을 기차 안에서 몽땅 소매치기 당했다며, 그 돈을 찾아달라고 선생님께 매달렸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주머니를 돌려보내고 원주역으로 가셨습니다. 원주역 앞 노점에서 소주를 시켜놓고 앉아 노점상들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기를 사나흘 하자 원주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소매치기들을 죄다 알 수 있었고, 마침내는 그 시골 아주머니 돈을 훔친 작자까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를 달래서 남아 있는 돈을 받아냈습니다. 거기다 자기 돈을 합쳐서 아주머니에게 돌려줬습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지은 뒤로도 선생님은 가끔 원주역에 나가셨는데, 그것은 그 소매치기에게 밥과 술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소매치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 영업을 방해했네. 이것은 내가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하는 밥과 술이라네. 한 잔 받으시고, 용서하시라고.”

앞으로 소매치기 같은 것 하지 말라든가 나무라는 말 같은 것은 일절 하시지 않았습니다.(최성현, ‘좁쌀 한 알’ 도솔출판사 참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덧붙여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사랑의 실천 대상인 ‘이웃’이 누구인지 당신의 한 평생 삶을 통해서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 이웃은 가까운 사람들, 절친한 친구들, 괜찮은 동료들 나와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이웃’은 차원을 달리하였습니다. 예수님께 이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족들, 열두 제자들뿐만 아니라 압제자 로마인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방인들, 세리와 죄인들, 생활이 문란한 여인들뿐만 아니라 막가는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던 바리사이들… 모두가 다 이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 사랑은 늘 멀고도 요원한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그리스도인으 사랑입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것이어서 힘겹게 느껴집니다. 때로 하느님은 너무도 요구가 많은 분이시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러나 한계나 장벽을 두지 않는 너무나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의 사랑, 힘들기에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 다시 한 번 마음 크게 잡수시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면서 힘겹고도 먼 사랑의 길을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