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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보잘것없는 종이요 죄인인 우리 각자를 위해 시중을 드시겠답니다!

10월 19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피정센터에 와서 형제들과 함께 주로 하게 되는 일이 시중드는 일입니다. 픽업해 드리는 일, 잠자리를 준비하는 일, 식탁을 준비하는 일, 서빙에다 뒷정리…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최고참 어르신 신부님께서도 예외 없이 바비큐 담당으로서 기쁘게 장작을 패시고, 화부 역할에 최선을 다하십니다.

오랜 세월동안 어디가나 늘 대접받고 살다가 시중드는 일을 해보니, 시중드는 일에 종사하는 분들의 고달픔이나 애환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집니다. 저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한 일이 될 때, 견뎌내야 할 몫이 얼마나 큰 것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시중드는 일아 만만치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때로 이 일을 통해 느끼는 보람과 기쁨도 의외로 큽니다. 존중받고 환대받는 느낌을 받은 분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그 감동을 주변 사람들에게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것도 작지만 사목의 한 부분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읽고 묵상하다가 개인적으로 화들짝 놀랐습니다. 언젠가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시중을 드신다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복음 12장 37절)

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일입니까? 창조주시면서 삼라만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보잘것없는 죄인인 우리 한명 한명을 위해 식탁에서 시중을 드시겠답니다. 우리를 위해 직접 식탁보를 펼치시고, 손수 수저를 놓으시고, 서빙을 하신답니다.

우리를 위해 시중을 드시는 하느님의 모습 앞에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며, 어이없어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땅에 육화하신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성목요일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지친 제자들을 위해 아침상을 차려놓고 그들을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가장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식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겸손한 섬김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식탁의 특징 역시 겸손한 섬김이어야 마땅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시중을 드시겠다는데, 아무에게나 시중을 드시지는 않습니다. 시중의 대상은 오직 깨어있는 종들입니다.

언젠가 하느님께서는 평생토록 허리끈을 단단히 매고 환하게 등불을 밝히며 살아온 우리를 보시고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앞에 풍성한 선물과 영적 잔칫상을 차려주심으로써, 우리가 수고한 만큼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